[아침의 시] 국경

입력 2011-06-09 17:42

박주택(1959∼ )

이웃집은 그래서 가까운데

벽을 맞대고 체온으로 덮혀온 것인데

어릴 적 보고 그제 보니 여고생이란다

눈 둘 곳 없는 엘리베이터만큼 인사 없는 곳

701호, 702호, 703호 사이 국경

벽은 자라 공중에 이르고 가끔 들리는 소리만이

이웃이라는 것을 알리는데

벽은 무엇으로 굳었는가?

왜 모든 것은 문 하나에 갇히는가?

문을 닮은 얼굴들 엘리베이터에 서 있다

열리지 않으려고 안쪽 손잡이를 꽉 붙잡고는 굳게 서 있다

서로를 기억하는 것이 큰 일이나 되는 듯

더디 내려가는 엘리베이터를 쏘아본다

엘리베이터 배가 열리자마자

국경에 사는 사람들

확 거리로 퍼진다


시인은 서울 서초동의 한 아파트 702호에 산다. 701호와 703호는 그러니까 근접 이웃이다. 그 근접 이웃이 언제부턴가 국경을 맞댄 낯선 타국이 되어 있다. 이웃과 소통되지 않은 건 언제부터일까.

이사 오는 사람이 으레 시루떡을 돌리면 떡을 받은 이웃은 빈 그릇만 보내기 저어해 과일 몇 알, 나물 한 접시, 김치 한 보시기라도 담아 건네던 공동체의 미덕은 그리 오래 전 일이 아니다. 그 미덕이 깨진 건 아파트가 들어서면서부터일 것인가. 간이역 대합실처럼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임시 가옥으로서의 아파트. 그곳에서 이웃과의 경계는 수평적 개념이 아니라 수직 개념으로 변형된다. ‘이웃은 타국이다’라는 이 시의 정의가 슬프고도 무섭다. 거기서 사람들은 다르게 산다. 어디 아파트뿐이랴. 가족 내에도 외국이 있고 국경이 있는 세월이 무상타.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