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라의 수다] 출산거부운동
입력 2011-06-09 18:26
1960년대 유럽의 여성해방운동은 실로 엄청났다. 젊은 여성들이 거리로 몰려나와 직장과 사회에서의 불평등에 반대하며 여성으로서 주도적 삶을 살 권리와 기회균등을 요구했다. 성난 목소리로 구호를 외쳤고 백주대로에서 고함을 지르며 브래지어를 불태웠다. 지금 한국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단지 그 혁명이 침묵 속에서 조용히 이뤄지고 있을 뿐이다. 한국 여성들이 선택한 저항의 형태는 간디의 비폭력 혁명을 연상케 할 만큼 수동적이다. ‘출산거부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한국의 출산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꼴찌다. 정부가 이 문제에 대처하겠다고 내놓는 정책을 보면 답답하거나 헛웃음이 나온다. 언젠가 남성 근로자의 배우자 출산휴가를 3일에서 5일로 늘렸다면서 대단한 결단인 양 보도하는 것을 보고는 정말 농담인 줄만 알았다.
한국은 형편이 돼야 아이를 낳는다는 말이 통하는 나라다. 내 주변만 봐도 자녀 한 명당 과외비만 100만원씩 드는 가정이 숱하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이 단지 경제적 문제 때문에 아이 갖기를 꺼려하는 것은 아니다. 어서 결혼해 아이 낳고 싶어하는 사람도 많다. 그런데 “괜찮은 남자가 없어서 못한다”고들 한다.
여성보다 남성 인구가 많은 한국에서 이 말을 이해하려면 가사와 양육을 대하는 한국 남성의 태도를 봐야 한다. 한국은 (남편이 있는) 싱글맘들의 나라라 할 만하다. 엄마들은 직장, 가사, 자녀교육을 전담하는 원더우먼이다. 집안일과 육아는 당연히 여자 몫이라 생각하는 건 나이 든 아저씨들뿐이 아니다. 얼마 전 한 TV 프로그램에 총각 의사가 출연해서 자기보다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 한국식 아침식사 차려주는 여자를 신붓감으로 원한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그 남자가 특이한 경우이겠거니 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주변 사람 모두 친구나 동료 중에 그런 남자를 하나씩은 다 알고 있었다. 부부가 똑같이 직장에 다녀도 아침식사는 당연히 아내 몫이란 의식이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한국에서 여성의 가사노동 시간이 현저히 많다는 건 통계로도 뒷받침된다. 한국 여성이 집안일로 보내는 시간은 남성의 5배나 된다. 그렇다고 창피해하거나 죄의식을 느끼는 남자는 없는 것 같다. 남자는 집안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굳게 믿기 때문이다. 남자들은 그렇게 배웠다. 남자 형제가 있는 친구들 얘기를 들어보면 하나같이 차별대우를 받으며 자랐다고 한다. 어른들이 남동생이나 오빠에게 먹을 것도 더 주고 칭찬도 더 했다는 것이다. 왜? 남자이기 때문에?
모든 남자에게는 어머니가 있다. 그리고 모든 어머니는 여자다. 사회적 변화는 가정에서 시작된다. 아버지, 남편, 오빠, 남동생, 남자 상사와 동료를 변화시키는 일은 힘들겠지만 아들을 제대로 교육할 수는 있다. 이제 젊은 여성 세대는 어머니 세대가 미처 하지 못한 일을 의식적으로 해내야 할 위치에 있다. 현재의 출산거부운동은 20년 후면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적어도 직장에서의 성차별은 사라지지 않을까? 경제인구가 부족한 나라에서 근로자 성별 따지는 여유를 부릴 순 없을 테니 말이다.
베라 호흘라이터(tbs eFM 뉴스캐스터)·번역 김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