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MRO사업 확장 막아라’ 정부 전방위 압력
입력 2011-06-08 21:44
정부가 대기업의 소모성 자재 구매대행(MRO) 사업 확장에 대해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정운찬 동반성장위원장은 8일 제주 롯데호텔에서 열린 중소기업리더스포럼 강연에서 “대기업들이 MRO, 기업형 슈퍼마켓(SSM), 외식사업 등에까지 진출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사업영역인 MRO에 진출하는 것은 동반성장이나 상생과는 거리가 멀다는 인식에 따른 것이다.
한국전력공사와 발전 자회사들의 경우 지난해 상반기부터 LG서브원에서 소모성 사무 자재를 구입하고 있다. 김쌍수 한전 사장이 LG전자 부회장 출신인 만큼 이들 기업의 MRO 업체 선정에 그의 영향력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정 위원장은 “재벌 대기업의 태도가 여전히 미온적이고 소극적”이라며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 유행했었는데 이제 재벌 총수들이 바뀌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또 “10년 뒤에는 삼성이 구멍가게가 돼 있을지 모른다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지적이 엄살은 아닐 것”이라며 “자신의 문제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은 총수 자신이고 답은 회사 내부에 있다”고 꼬집었다.
조달청은 이날 대기업 MRO 업체들이 조달시장에서 독주하는 것을 막고자 중소기업 독자 컨소시엄에 가점을 부여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중소기업 독자 컨소시엄이 실적 평가에서 대기업보다 낮은 점수를 받을 수밖에 없는 현실을 고려했다는 게 조달청 설명이다.
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도 대기업의 MRO 관련 중소기업 영역에 대한 부당침해 문제 등을 집중 조사하고 있다. 대기업 집단이 비용절감 등을 목적으로 MRO 계열사를 두는 것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지만, 부당한 몰아주기나 납품단가 인하 요구 등이 있었다면 위법소지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또한 맹형규 행정안전부 장관은 간부회의에서 문구류 등 소모성 자재를 구매할 때 대기업을 배제하고 중소기업과 거래하라고 부내 공무원들에게 지시했다. 맹 장관은 “대기업이 MRO를 전담하는 계열사를 두고 문구와 청소용품, 순대 등까지 납품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했다. 이에 따라 행안부는 연간 380억원 규모의 소모성 자재를 구매할 때 대기업 MRO 계열사를 배제하고 경쟁 입찰 또는 수의계약 방식으로 중소기업과 직접 거래할 방침이다.
대기업의 MRO 시장 진출을 막아달라는 소상공인들의 움직임도 확산되고 있다. 소상공인으로 구성된 MRO 비상대책위원회는 “동반성장위가 유통 분야 중소기업 적합업종 심사를 조속히 착수해 MRO 분야를 적합업종으로 선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동반성장위는 현재 제조업만을 대상으로 적합업종 선정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MRO 시장에 진출한 대기업 계열사는 18개 안팎이다. 이 가운데 삼성 계열 아이마켓코리아, 포스코 계열 엔투비, 코오롱을 비롯해 10개 업체가 투자한 코리아e플랫폼(KeP), LG 계열 서브원 등 4개 기업이 MRO 시장 매출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대기업의 MRO 시장 진출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자 아이마켓코리아, 엔투비, KeP는 지난 3일 공구와 베어링 품목에 대한 사업 확장을 중단하겠다는 내용의 사업조정에 합의했다.
황일송 조민영 기자, 서귀포=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