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50년] 과거 오명 씻고 ‘안보 보루’로 거듭나기 안간힘
입력 2011-06-08 18:19
국가정보원이 10일로 창설 50주년을 맞는다. 1990년대 초 냉전이 종식된 이후 세계 각국은 눈에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정보전쟁을 벌이고 있다. 특히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국가안보의 ‘보루’인 국정원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 장년이 된 국정원이 민주화에 역행했던 과거의 오욕을 씻고 세계 최고 수준의 국가안보 기구로 거듭나기 위한 역량 강화에 힘써야 한다는 지적이다.
국가정보원 정보 획득의 최우선 대상은 북한이다. 50년 전 창설 당시도 그랬고 앞으로도 통일 이전까지는 변함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에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멀리 보면 1989년 문익환 목사 방북 당시 “안기부(옛 국정원)가 문 목사가 베이징에 간 것까지 파악했을 뿐 북한에 들어간 사실을 놓친 것 아니냐”는 정치권의 질타가 있었다.
염돈재 성균관대 국가전략대학원장(전 국정원 1차장)은 8일 “북한에 대한 정보는 인류 첩보 사상 가장 어려운 목표”라며 “역대 어느 정권도 만족할 만한 수준에 도달한 적은 한번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현 정부 들어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 부족 문제는 도드라지고 있다. 지난달 20일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방중 시 ‘김정은 동행 오보 논란’이 그랬고, 지난해 3월과 11월에 발생한 천안함·연평도 사건 때도 “국정원은 도대체 무엇을 했느냐”는 비판이 일었다. 김정은 가짜 사진 언론 공개 시 국정원의 김정은 사진 미확보 논란(2010년 9월), 김정일 후계자로 떠오른 ‘김정운’의 직책과 실명 미파악(같은 해 10월) 등도 국정원을 곤혹스럽게 했다. 3대 세습 등 북한 정세의 유동성이 증대되는 현 상황에서 국정원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나오는 이유다.
정보력뿐 아니라 수집된 정보를 분석·판단하는 능력이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천안함 침몰 15시간 전쯤 북한 잠수정이 사라진 사실을 알았고 침몰 직전 북측 해안 포문이 개방된 것을 파악했지만 침몰을 막지 못했다.
이처럼 대북 정보력과 분석·판단력에 문제가 생긴 것은 우선 전문가를 키우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국정원장 출신인 민주당 신건 의원은 “과거에 비해 대북 정보력이 약화됐다는 느낌을 자주 받는다”며 “가급적 전문가는 갈아치우지 않아야 하는데 현 정부 들어 잦은 인사 교체로 인적 파워가 약해진 것 같다”고 분석했다. 정보 당국에서 일했던 한 소식통은 “전통적으로 미국은 도·감청 등을 통한 기술 정보가 강하고 우리는 휴민트(인적 정보)가 강했다”며 “하지만 김정은의 이름, 김정일 건강상태 등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점 등을 볼 때 휴민트가 약화된 것으로 파악된다”고 말했다.
국방부 등 정보 당국 간 공조가 원활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정보장교 출신 A씨는 “북한의 정치 경제 등 전략적 분야는 국정원에서 줘야 하는데, 국정원에서 오는 정보가 많지는 않았다”며 “국정원이 있으면서 안 주는 건지 없어서 못 주는 건지 판단하기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이 때문에 ‘청와대-국정원-군 정보 당국’ 간의 정보전달 체계를 다시 한번 짚어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이 대북 관련 정보 판단 시 국정원에 의견을 물을 정도로 국정원의 대북 정보력 수준이 높다는 반론도 있다. 이를 더 키우기 위해서는 예산을 늘리는 등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폐쇄적인 북한사회 특성상 휴민트의 역할이 갈수록 축소되고 기술 정보가 중요시되는 점을 감안해 정찰기, 인공위성, 통신감청 시설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물적 지원 외에도 국정원 내 북한 정보 전문가를 전략적으로 키워야 한다.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정보는 축적돼야 하고 그래야 제대로 분석을 할 수 있다”며 “대북 정보 관련자들이 장기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원도 지난 4월 1차장(해외·북한 담당)과 3차장(과학·방첩·대북공작)에 타 부처 전문가 출신을 발탁하면서 쇄신을 꾀하고 있다.
한기범 통일연구원 객원연구위원(전 국정원 3차장)은 “국정원은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때”라며 “북한 정보 중 사회 부문은 민간에, 전술정보는 군에 맡기고 전략 정보에 치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이성규 김남중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