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로 흐르는 돈맥을 막아라”… 당국, 금융권 ‘옥죄기’ 나섰다

입력 2011-06-08 21:21


이달 말 발표 예정인 ‘가계부채 종합대책’을 앞두고 금융당국이 시중의 유동성을 조이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고 있다. 타깃은 가계로 흘러드는 유동성. 가계대출 자금을 억제하고 기업 등 생산적인 곳으로 돌리려는 게 근본 목적이다. 일부에선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을 늦추는 대신 금융당국이 금융정책을 통해 시중 유동성을 조이는 것으로 ‘역할 분담’한 것 아니냐는 분석도 있다.

◇전방위 금융권 돈줄 죄기 시작=8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은 최근 국민, 신한, 우리, 하나, 기업은행, 농협 등 6개 은행의 수석부행장 등을 불러 하반기 영업점 경영성과평가(KPI) 기준 마련 때 외형 성장과 관련된 항목을 손질하도록 주문했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은행의 영업점으로부터 과열경쟁이 심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이들 6개 은행의 가계대출이 올해 1분기에만 2조5000억원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이 기간 국내 가계대출 증가액 6조3000억원의 약 40%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에 따라 은행들은 대출과 수신, 펀드, 방카슈랑스, 카드, 퇴직연금 등 외형 성장과 관련된 항목의 비중을 줄이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KPI 배점이 줄어들면 영업점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대출 영업을 자제하게 되는 효과를 거둔다.

전날 발표된 신용카드 대책도 은행 대출억제책과 맥락을 같이한다.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은 신용카드사 간 확대경쟁 시 특별검사 실시, 공정경쟁 위반 시 일정기간 신규 카드발급 정지 등을 골자로 하는 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조치는 최근 ‘묻지마 카드 가입’ 경쟁 등이 빈번해지면서 과거 카드대란이 재발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다. 지난해 신용카드는 959만장이 신규 발급됐으며 카드대출은 19%나 증가해 전 금융권 가계대출 증가율(7.8%)을 배 이상 초과했다.

제2금융권도 감독당국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상호금융회사의 대손충당금 적립비율은 올리고 비과세 예금한도는 낮추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상호금융사는 정상 여신에 대해 0.5% 이상, 요주의 여신에 대해서는 1% 이상의 대손충당금을 적립하고 있는데 이 비율을 올린다는 것이다. 또 현행 3000만원 이하로 돼 있는 비과세 예금한도를 2000만원으로 축소하는 방안도 추진키로 했다. 가계대출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상위 5개 할부금융회사에 대해서도 가계대출 비중을 낮추는 분기별 경영계획을 마련, 제출하도록 최근 지시했다.

◇가계로 흐르는 돈을 막아라=당국이 금융권의 돈줄 죄기에 나선 것은 가계부채의 급증세를 막기 위해 가계가 쉽게 돈을 빌릴 수 있는 구조를 깰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저금리 구도가 지나치게 장기화하면서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때 유일하게 가계부채가 늘어난 나라로 꼽힌다. 한국은행 조사결과 가계부채는 올 1분기 800조원을 돌파했으며 특히 가계대출 증가율은 2년3개월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최근 당국의 금융정책 초점은 카드사, 제2금융권, 시중은행의 자금을 가계에서 기업으로 흐르게 하는 것”이라며 “이르면 이달 말 발표되는 가계부채 종합대책에 앞서 시장 충격을 사전에 완화하려는 포석도 있다”고 말했다. 기업대출이 늘어날 경우 투자 증가, 고용 창출, 소비회복으로 이어지면서 이명박 대통령이 최근 강조한 ‘내수부양’ 효과를 거둘 것이라는 복안도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