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선 안 당해” 공멸작전?… 兄 고발 박찬구 회장 속내는
입력 2011-06-08 18:22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이 자신의 형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을 사기·위증 혐의로 검찰에 고발함으로써 ‘형제의 난’ 2라운드에 불을 지폈다. 검찰 수사가 목을 조여 오자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업계에선 진짜 억울해서 진실을 가려달라는 취지의 ‘호소’를 하고 있다는 관측과 ‘나 혼자서는 죽지 않는다’는 식의 ‘공멸작전설’, ‘형 때문에 내가 이 지경이 됐다’며 앙갚음을 한다는 ‘보복설’ 등 온갖 억측이 나돈다.
우선 박찬구 회장의 최근 행보에는 형에 대한 원망이 짙게 깔려 있는 분위기다. 박 회장은 검찰 조사를 받는 게 박삼구 회장 탓이라고 보고 있다. 계열사도 아니고 협력업체에 있는 비자금 계좌를 검찰이 손에 넣은 건 박삼구 회장 측의 제보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검찰과 금호아시아나가 이른바 ‘플리바게닝’을 했기 때문이 아니냐는 의심도 하는 분위기다.
박찬구 회장은 최근 검찰에 출석하면서 “죄 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다. 누군지는 알아서 판단하라”고 말했다. 또 (박삼구 회장이) 비자금 조성에 관련이 있다고 직설적으로 답했다. ‘비자금에 나만 연관돼 있느냐. 다 까발려보자’는 의미로 해석된다.
금호석화 관계자는 8일 “비자금 계좌에서 금호석화 쪽으로 흘러들어간 자금을 검찰이 포착한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그러나 실제 비자금 계좌는 금호아시아나 측이 관리했는데 금호석화만 주범으로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비자금 몸통은 따로 있는데 왜 곁가지인 우리만 괴롭히느냐’는 불만으로 들린다.
박찬구 회장은 또 미공개 정보를 이용한 주식 매각 혐의도 박삼구 회장 측을 겨냥했다. 박찬구 회장 자신은 2009년 6월 대우건설 매각 당시 의사결정 라인에서 배제돼 있었고, 박삼구 회장도 비슷한 시기에 지분을 팔았는데 자신만 수사 받는 게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금호아시아나 측은 이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그러나 박찬구 회장의 대응방식은 스스로 입지를 더욱 좁힐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은 조사대상이 내분을 일으켜 양쪽에서 서로의 비리를 들추고 제보하면 쉽게 수사할 수 있다. 박찬구 회장의 주장에 따라 박삼구 회장의 비자금 의혹도 수사하게 되면 형제간 어떤 비리가 더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황이다. 결국 박찬구 회장의 행보는 혼자 당하느니 형제간의 공멸을 택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노석철 기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