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태로운 사랑에 상처받는 인간 그려내… 소설 ‘미칠 수 있겠니’ 펴낸 김인숙

입력 2011-06-08 17:45


소설가 김인숙(48)씨가 인도네시아의 열대 섬 발리의 예술인촌 우붓(ubud)을 처음 찾은 건 5년 전이다. 당시 인도네시아어로 번역된 ‘한국작가단편집’ 출간기념회에 참석차 자카르타에 갔다가 발리를 여행하면서 그곳의 풍광에 매료되었다. 이후에도 그는 발리를 찾았고 짧게는 한 달, 길게는 4개월에 걸쳐 체류했다. 장편 ‘미칠 수 있겠니’(한겨레출판) 역시 그가 발리에서 집필해 지난해 인터넷 서점 예스24에 연재한 작품이다.

7일 서울 인사동에서 만난 김씨는 “발리에 체류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면서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겨났다”며 “처음엔 ‘그들’의 이야기로 시작되었으나 결국에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그들’과 ‘우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겠어요. 발리어는 시제 구분이 전혀 없는 아주 독특한 언어로 늘 현재 시제로만 얘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더군요. 그런 언어를 만들어낸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싶었지요.”

소설 속 남녀 주인공의 이름은 각각 ‘유진’과 ‘진’으로 명기되지만 호명할 때는 ‘진’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도 발리 식 풍속에 따른 것이다. “아이를 낳으면 첫째 아이는 ‘와얀’ 둘째 아이는 ‘마데’, 셋째는 ‘꼬망’, 넷째는 ‘끄뜻’이라고 부르지요. 다섯째부터는 다시 ‘와얀’으로 돌아가지요. 발리에서 가장 흔한 이름은 ‘마데’예요.”

소설의 배경은 발리를 연상시키지만 그렇다고 발리라는 특정 섬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동남아 일대의 어느 관광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서사로 확장된다. 7년 전, 한 열대 섬에서 살인사건을 겪은 ‘진’은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묵묵히 참아내며 유진을 찾아 매년 섬으로 찾아든다.

“이름이 같은 사람끼리 연인이 될 확률은 얼마나 될까. 모든 것이 소중하기만 했던 한때, 그 소중함 때문에 온몸이 깃털처럼 흔들릴 때, 진은 그에 관한 모든 것이, 그리고 그들에 관한 모든 것이 꿈같았다. 자신과 같은 이름의 남자를 만난 것이 운명이라고 여겨졌다.”(13쪽)

그러나 두 명의 ‘진’이 만들어가는 사랑은 마치 꼭 닮은 두 개의 날을 가진 가위 앞의 종이처럼 언제든지 상대방을 벨 수 있을 만큼 위태롭다. 어느 날 유진을 찾아간 진은 그 집에서 하녀로 일하는 현지 처녀가 유진의 침대에서 일어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된다.

‘진’이 격분을 참지 못해 현지 처녀를 칼로 찌를 때도 지진이 일어났고 그 사건 이후 7년이 지나 다시 찾은 섬에서 만난 현지 가이드와 사랑에 빠질 때도 지진이 발생한다. 여기엔 사랑을, 그리고 삶을 뒤흔들고 싶은 작가의 자아가 반영되어 있다. 아니, 모든 인간은 삶의 주인이고 싶고, 사랑의 주인이고 싶은 욕망의 소유자가 아니던가. 김씨는 “사실 소설을 써내려가는 동안 제 스스로에게 ‘미칠 수 있겠니, 이 삶에’라고 무수히 질문을 던졌지만 대답은 아직도 어렵네요”라며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여전히 물을 겁니다. 언젠가는 미칠 수 있지 않겠어요? 그 섬처럼 완벽한 매혹에 말이지요.”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