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편익 도외시한 장관의 거취
입력 2011-06-09 00:38
일반의약품의 슈퍼 판매 방안을 거부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이 동네북 신세로 전락했다. 의사협회는 7일 “일반의약품 편의점 판매를 무산시킨 진 장관이 ‘선택의원제’를 강행할 경우 퇴진운동을 벌이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이날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국민 편익을 고려해야 한다"며 진 장관을 우회적으로 질책했다고 한다. 국민 편의성을 도외시한 진 장관의 처신을 지적한 것이다.
청와대는 이어 8일 일반의약품 슈퍼판매를 재추진하겠다면서 진 장관을 강하게 압박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도 거들었다. 박 장관은 경제정책조정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부처 사이에 여전히 칸막이가 남아 있다. 정책현안에 대한 행정부의 일사불란한 대응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표현은 점잖게 했지만 기재부가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의 하나로 내세운 일반의약품 슈퍼 판매를 무산시킨 진 장관을 겨냥한 발언이었다. 전국 8개 시·도 가정상비약 시민연대 대표도 이날 복지부가 국민의 고통과 불편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 장관의 처지가 사면초가인 셈이다.
진 장관이 약사회 압력에 굴복할 조짐은 이미 수개월 전 감지됐다. 진 장관이 지난 1월 자신의 지역구에 있는 서울 성동구약사회 정기모임에 참석해 “여러분이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국민의 애로사항을 해결하려는 복지부 장관이 아니라 다음 총선에서 지역 약사들의 표나 얻으려는 정치인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복지부 정책에 영향을 받는 기관·단체가 120개를 넘고, 이 가운데는 의사협회 약사회 한의사협회 제약협회처럼 결속력이 강한 단체들도 많다. 이익단체 눈치나 보면서 그들의 압력에 휘둘리는 장관에게 국민을 위한 보건·복지 정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여론의 집중 포화를 맞고 있는 데다 임명권자로부터 지적까지 받았고, 경제정책조정회의에서조차 왕따를 당하는 진 장관의 영(令)이 설 리는 만무하다. 국민의 80% 이상이 지지하는 정책을 백지화하고 대통령과 다른 입장을 취하는 인사가 장관직을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 진 장관은 국민과 대통령의 뜻을 겸허하게 수용해 거취 문제를 결정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