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박동수] ‘검찰 힘 빼기’ 중단하라

입력 2011-06-08 17:38


“정치권은 중수부 폐지안을 철회하고 검찰의 고유영역을 존중해 줘야 한다”

아무래도 정치권은 대검 중수부 폐지안을 이쯤에서 접어야 할 것 같다. 검찰의 반발이나 청와대의 신중론 때문이 아니다. 다수 국민에게 폐지안의 당위성을 충분히 납득시키지 못하고 있는 탓이다. 검찰 개혁의 필요성이 있다 해도 이런 식은 곤란하다는 게 여론의 주된 흐름이다.

오히려 지금은 검찰에 힘을 실어줄 시점이라는 지적이 많다. 저축은행사태 때문이다. 경제 비리를 색출해내야 할 금융위·금감원·감사원 등 주요 감독기관 엘리트들이 되레 비리의 공모자가 돼버린 기막힌 현실 앞에서 ’이제 믿을 곳은 검찰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들이 자연스레 나온다.

중수부를 폐지하면 정치인·관료·기업인 등은 좋아할 것이다. 하지만 일반 서민들에겐 분명 손해다. 이번 저축은행 사태에서 보듯 일반 서민들을 등친 권력형 비리행위자들을 수사할 곳은 대검 중수부 외에는 없다. 이 사건으로 피해를 본 청소부와 구두닦이, 시장 상인들이 매일 중수부로 전화해 “부실 금융기관을 비호한 타락한 관리와 정치인들을 엄벌해 달라”고 호소하고, 중수부 폐지 반대 상경집회까지 개최한 이유를 곱씹어 봐야 한다.

물론 검찰도 여러 부끄러운 과거를 갖고 있다. 스폰서 검사니 하며 검사의 처신과 관련된 불미스런 일들이 있었고, 표적수사와 강압수사 논란으로 생긴 부정적 이미지도 완전히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현재로선 다른 국가기관들보다 상대적으로 청렴도와 직업적 자존심, 정의감이 높은 검찰조직에 권력형 비리 척결의 대임을 맡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큰 사건들을 통해서만 검찰을 보지만 사실 대다수의 검사는 일반 국민들과 관련 된 수많은 ‘사소한 사건’들을 정의와 형평에 맞게 처리하기 위해 밤늦게까지 씨름한다. 검찰의 이런 보이지 않는 노력들이 우리사회의 법질서와 투명성을 이 정도나마 유지시키고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런데도 정치권은 검찰의 어두운 부분만 부각시켜 힘 빼기에 앞장서고 있다. 검찰의 힘을 빼면 자신들이 좀 더 편안하게 활동(?)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듯하다. 다시 확인커니와 현 제도상 정치권과 관료세력의 부패·비리를 견제할 수 있는 기관은 검찰뿐이다. 이웃 일본의 경우도 막강한 정치권력과 금력 간의 결탁·부정에 맞서 싸워온 조직은 검찰이었다. “검찰은 도랑에 오물이 고여 있으면 청소할 뿐”이라고 한 ‘록히드 사건’ 주임검사 요시나가 유스케(吉永祐介)같은 소신 있고 용기 있는 검사, 그가 속했던 도쿄지검 특수부 같은 곳이 있었기에 일본의 권력형 비리는 효과적으로 제어될 수 있었다.

이쯤에서 원론적으로 정리해 보자. 검찰과 정치의 가장 바람직한 관련방식은 각자의 고유영역을 인정하고 간섭하지 않는 것이다. 정치에는 정치의 고유영역이 있고 검찰에는 검찰의 고유영역이 있다. 양자는 서로의 영역을 쉽게 넘보지도 침범하지도 말아야 한다.

검찰은 준(準)사법적 기관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다. 때문에 정치권의 검찰에 대한 관여는 자제되거나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 위에 군림하려 해선 안 된다. 물론 검찰도 정치의 영역을 함부로 침범하거나 무소불위의 검찰권 행사로 이른바 ‘검찰파쇼화’로 치닫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재삼 강조하지만, 사회의 거악(巨惡)을 수술하는 외과의사로 비유할 수 있는 대검 중수부는 유지돼야 한다. 암의 환부를 잘라내는 외과의사가 없는 종합병원은 생각할 수 없듯, 권력형 비리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는 검찰은 상상할 수 없다. 중수부의 운용에 문제 되는 부분이 있다면 고치면 되는 것이지, 아예 그 조직을 없애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외과의사의 수술이 마음에 안 든다고 외과수술영역 자체를 병원에서 들어내는 것과 진배없다.

우리사회 지배 엘리트 계층은 아직 혼탁하다. 특히 정치인은 대형 비리사건이 터질 때마다 이름이 거명되지 않은 적이 드물다. 정치인들은 도랑을 청소하는 사정기관의 힘을 빼기보다 자신들의 도랑에 맑은 물이 흐르도록 먼저 노력해야 한다.

박동수 카피리더 d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