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태원준] 적정 등록금

입력 2011-06-08 17:37


대학 등록금이 너무 비싸다는 데에는 대부분 공감하는 듯하다. 복지 포퓰리즘과 싸우고 있는 오세훈 서울시장조차 블로그에서 “사실 요즘 등록금 정말 미쳤습니다. 저도 (두 딸 등록금 때문에) 허리가 휘는 줄 알았습니다”라고 했으니, 비싸지 않다고 말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얼마나 비싼지도 안다. 한국 등록금은 세계에서 두 번째로, 미국 다음으로 비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6년부터 회원국 등록금 통계를 발표하면서 이 사실이 알려졌다.

이렇게 비싸니까 좀 낮추자는 여론이 높아졌다. 한껏 뜨거워진 논쟁을 조금 식혀줄 질문 중 하나는 “그럼 얼마나 낮출까?”일 것이다. 한국 대학이 학생들에게 받아야 할 ‘적정 등록금’은 얼마인가. 연간 등록금 1000만원 시대라고 하는데, 정확히 말하면 지난해 사립대 평균 등록금은 754만원이었다. 이를 얼마나 낮춰야 적정한 것인지, 지금까지 제시된 숫자가 몇 개 있다.

먼저 450만원. 취업 사이트 ‘사람인’이 지난달 대학생 404명을 설문조사했다. 55.9%가 ‘지금 등록금은 감당키 힘든 수준’이라 답했고, ‘얼마가 적정하다고 생각하나’란 질문에 응답자들이 액수를 적어냈는데, 그 평균값이 450만원이었다. 물론 이런 조사에서 치밀하게 계산기 두드려 답한 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냥 ‘우리 집 형편에 이 정도면 좋겠다’ 하는 액수다. 이 숫자는 절묘하게 2000년 사립대 평균 등록금(449만원)과 일치한다. 대학과 학생이 생각하는 등록금 적정선에는 정확히 10년이란 괴리가 있다.

다음 350만원. 올 초 한국대학교육연구소가 펴낸 책 ‘미친 등록금의 나라’에서 제시된 금액이다. 754만원의 ‘반값’인 377만원보다 조금 적다. 이런 계산에서 나왔다. ‘캐나다나 유럽(영국 등 등록금을 부과하는 나라)의 등록금 수준은 1인당 국민소득의 10분의 1이 채 안 된다. 일본도 5분의 1 정도인데, 우리나라 사립대학은 3분의 1이다. 한국의 2009년 구매력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은 2만8000달러쯤 된다. 1100원 환율로 계산하면 약 3100만원이고, 그 10분의 1은 310만원이다.’

여기에 이런저런 한국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350만원 정도면 결코 무리하게 낮은 수준이 아니라고 이 책은 주장한다. 저자 중 한 명인 임희성 연구원은 “OECD가 등록금 비싼 나라와 싼 나라를 구분하는 기준선이 1500달러(약 165만원)다. OECD 기준에서 350만원은 결코 싸지 않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300만원을 들고 나왔다. 최근 3년간 우리나라 월 평균 가계소득이 300만원을 조금 넘는다. 이는 사람들이 버는 수입을 기준으로 등록금을 산출하자는 주장이다. 대학생 1년 학비가 보통 가정의 한 달 수입 정도라야 서민과 중산층이 큰 부담 없이 자녀를 대학에 보낼 수 있고, 지금 한국에선 그 액수가 300만원이라는 것이다.

가장 적은 금액을 제시한 사람은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 그는 대학 무상교육을 말한다. 부자감세를 되돌리고, 간접세와 직접세 비율을 조정하면 충분한 재원이 마련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적정 등록금을 과학적으로 산출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포항공대 등 일부 대학이 교육원가 계산을 시도했고,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가 지난해 ‘적정 등록금 책정을 위한 교육원가 분석’ 세미나도 열었지만 실제 적용하고 있는 대학은 없다. 그게 될 리가 없다. 등록금이 원가를 계산해 책정하는 거라면 무상교육을 하는 유럽 대학의 교육원가는 0원이란 말인가.

300만원, 350만원, 450만원, 그리고 0원과 754만원까지. ‘적정 등록금’이 이처럼 다양하다는 것은 계산기로는 결코 정답을 찾아낼 수 없다는 얘기다. 대학 교육을 국가가 필요해서 하는 것인지, 개인이 필요해서 하는 것인지, 공익성이 우선돼야 하는지, 자율이 더 중요한 것인지. 등록금 책정에는 계산보다 생각이 필요하다.

태원준 특집기획부 차장 wjt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