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궁의 사계] 참새와 오디

입력 2011-06-08 17:36


창덕궁 관람지 입구에 아름드리 뽕나무가 있다. 높이가 12m에 이른다. 나이는 400년 정도. 천연기념물이다. 뽕나무는 원래 키가 작은 것으로 알지만 잎을 따기 위해 가지를 자르면서 자그맣게 키웠기에 그렇다. 궁궐의 뽕나무가 이처럼 크게 자란 것은 오래전에 농상(農桑)을 포기했다는 증거다.

왕조시대에 누에치기는 기간산업이었다. 왕비가 친잠례(親蠶禮)를 통해 모범을 보였다. 이 행사는 일제시대에도 이어지다가 1939년에 그만뒀다. 궁궐은 뽕나무 천지였다. 세종 5년에 잠실을 담당하는 관리의 공문에 따르면 경복궁 안에 3590주, 창덕궁 안에 1000주가 있었다. 한강 밤섬에는 왕실 직영 뽕나무밭을 운영했다.

뽕나무 열매 오디는 상실(桑實)이라고 적었다. 맛이 달콤해 들판을 누비는 시골 아이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이제 훌쩍 자란 뽕나무에 사람 손이 닿지 않으니, 날짐승들의 먹잇감이 됐다. 저놈의 참새 부리도 진보라 오디 색깔로 잔뜩 물들어 있을 테지.

손수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