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상온] 한민족考
입력 2011-06-08 17:37
‘민족’이라는 말이 우리 사회에서 지고(至高)의 가치를 지니게 되면서 늘 궁금했던 게 하나 있다. 도대체 한민족은 언제부터 단일민족으로서 한민족(韓民族)임을 자각하게 됐을까 하는 의문이다. 역사 상식으로는 신라가 3국을 통일함으로써 ‘최초의 민족 통일’을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는 후세의 평가일 뿐 정작 고구려 백제 신라 사람들은 서로를 하나의 민족이라고 생각했을까?
이런 의문은 동일 언어나 공통 언어를 민족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요소라고 할 때 더 커진다. 지금도 다른 지방 사투리를 들으면 이해 못하는 경우가 있거니와 국경 통제와 교통수단 미비로 인적 교류가 극히 미미했을 그 옛날 평안·함경도 중심의 고구려와 충청·전라도의 백제, 경상도의 신라 사람들이 볼 때 상대의 말은 요즘의 외국어나 다름없었을 터.
더구나 만주까지 영토로 삼았던 고구려의 경우 피지배계층에는 말갈·여진 등 이른바 만주족이 다수 섞여 있었고, 백제는 일본, 특히 왕족 및 귀족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었다는 게 정설이다. 또 신라의 지배계층(김씨 왕조)은 문무왕 비문에 따르면 흉노족의 후예이고, 신라인은 진(秦)나라의 유민이라는 중국 사서 기록도 있다. 그렇다면 고구려어에는 만주어가, 백제어에는 일본어가, 신라어에는 흉노어, 중국어가 혼합돼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단일민족이라는 개념이 과연 있었을까?
이에 대한 하나의 답이 나왔다. 한국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라는 존 덩컨 미 UCLA대 교수의 발언이다. 며칠 전 방한한 그는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한민족의 민족의식 형성시기가 고려 때였다고 말했다. 고려인들이 스스로를 ‘삼한 사람’이라고 부르며 왕조를 초월한 존재로 여겼다는 것.
하지만 그대로 수긍하기엔 미심쩍다. 고려는 국호에서 보듯 고구려를 계승한 나라임을 표방했다. 그런데도 고려인이 고구려를 뺀 한반도 중남부의 삼한 사람만으로 민족적 정체성을 한정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그렇게 보면 일본에 나라를 뺏긴 뒤 ‘국민’ 지위를 상실했을 때 나라가 없어도 존재할 수 있는 ‘민족’에 매달린 결과물로서 한민족이라는 개념이 정착됐다는 설명이 더 설득력을 지닌다. 말하자면 한민족 개념은 근대의 산물로 생긴 지 기껏해야 100년밖에 안 된다는 얘기다. 하기야 민족이라는 말 자체가 1880년대 일본에서 nation을 번역한 용어다. 다민족 다문화시대로 가는 이제 민족, 특히 단일민족의 굴레에서 벗어날 때도 됐다.
김상온 논설위원 so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