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프롤로그] 옛 ‘교회오빠’

입력 2011-06-08 17:52


고등학교 때 학교 선배를 따라 서울 난지도 빈민촌 어느 교회에 봉사활동을 다닌 적이 있습니다. 정확히 상암동이죠. 그 교회가 있는 마을은 재활용 쓰레기를 팔아서 먹고살았습니다. 지금 상암동이 천지개벽한 것을 보면 ‘기적’이라는 단어가 피부에 팍팍 와 닿습니다.

정연희의 소설 ‘난지도’(1985년 작), 이보다 앞서 이정환의 소설 ‘샛강’(1976)을 읽어보시면 서울 시민의 하치장 난지도의 비명을 들으실 수 있을 겁니다. 이화여대 출신 문재 정연희씨는 연단 끝에 기독교 소설 ‘난지도’를 썼지요. 두 작품 모두 파리떼가 마치 카펫 위를 날아다니는 환경 속에서의 삶이 나옵니다. 실제 그랬습니다. 그 아래서 폐기물을 주워 팔아 살았고, 또 그들을 구령하기 위해 빈민선교를 한 이들이 있었습니다.

아 이런, 학교 선배 얘기하다가 그만….

지금 돌이켜보니 그 선배, ‘교회오빠’였습니다. 잘생겼지, 기타 잘 치지, 노래 잘하지, 시내 부자 동네에 살지…그런 교회오빠가 상암동 빈민촌 교회에 나타났으니 그곳 여학생들 난리가 났지요. 기타라도 치면 교복 칼라(옷깃) 다려 입은 소녀들이 둘러쌉니다. 저요, 저는 스펙이 달려 축에도 못 끼었습니다.

하긴 그 선배 제게도 선망의 대상이었습니다. 불과 1년 선배인데도 어떻게 그리 신실하고 달란트가 많은지. 하지만 그 교회오빠 자생적으로 교회오빠 된 것이 아니라 당시 우리 학교 국어교사의 전도로 그리된 것이지요. 그 선생님도 ‘교회오빠’ 스펙입니다. 남학교여서 그렇지 여학교였다면 학생들 뒤로 넘어갔지요. 검은 테 안경 끼고 창백하게 잘생긴 교생 스타일. 이들 사제는 십계명에 충실해 이웃을 위해 교회오빠가 된 겁니다. 말하고 보니 요즘 교회오빠들하고 좀 차이가 있네요. 스타일리스트, 속된 말로 ‘간지 나는’ 오빠가 요즘 교회오빠의 전부라면, 좀 아니죠?

전정희 종교기획부장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