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정보 제공·지구촌 현안 토론 ‘RHoK’… 좋은 세상 만드는 ‘착한 해커들’
입력 2011-06-07 18:44
해커들이 호주화재협회(CFA), 호주고위공무원단(SES), 호주기상청(BOM), 빅토리아 경찰, 빅토리아도로공사(Vicroads) 통신망에 침입했다. 화재, 태풍, 홍수, 교통사고 등 재난상황을 알리는 통신망이 장악당한 것이다. 거짓 경보를 울려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도 있고, 막대한 돈을 요구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들이 악랄한 해커라면 말이다.
하지만 지난 4∼5일 호주 스윈번 대학교에 모인 해커들은 달랐다. 이들은 이 통신망에서 얻은 정보를 한곳에 집중시켜 모든 재난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빅얼럿(VicAlert)’이란 개념을 만들어냈다고 미 abc방송이 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각 기관에서 얻은 정보를 국제공용으로 사용되는 통신규약을 사용해 웹사이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스마트폰 등으로 전송해 위험에 대비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같은 시간 전 세계 17곳에서는 ‘착한 해커’들이 머리를 맞대고 자신의 재능으로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 있었다. 이들의 정체는 ‘랜덤 해크스 오브 카인드니스(Random Hacks of Kindness·RHoK)’다.
RHoK는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야후, 세계은행, 미국 항공우주국(NASA) 등의 후원으로 2009년 11월 시작됐다. 참석자들은 누구의 강요가 아닌 자발적으로 참여한 자원봉사자들이다. 이들은 한자리에 모여 특정 문제를 두고 난상토론을 벌이고 함께 해결책을 찾는다. 해커들의 표현대로 ‘해커톤(Hackathon)’이 이뤄지는 것이다. RHoK의 목표는 해마다 두 차례 ‘해커톤’을 개최하는 것이다. RHoK 공동창설자인 제레미 존스톤은 “우리의 임무는 인류를 위해 해킹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RHoK는 현재 12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등록된 사람은 2000명에 달한다. 지난해 12월 뉴욕에서 열린 RHoK 모임에서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기조연설에 나설 정도로 세계적인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아이티, 칠레 지진 당시 생존자 찾기에 사용됐던 모바일 문자 프로그램 ‘아임OK(I’mOK)’, 산사태 위험을 표시하는 지도 ‘CHASM’, 동일본 대지진 때 친구나 가족을 찾아준 구글 프로그램 ‘퍼슨 파인더(Person Finder)’ 등을 만드는 성과를 거뒀다.
지금까지 활동은 주로 재난 상황에 대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방점이 찍혀 왔다. 하지만 앞으로 더 많은 분야에서 이들의 활동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Key Word : 해커톤
해커톤은 ‘핵(Hack)’과 ‘마라톤(Marathon)’의 합성어다. 하나의 프로그램 개발을 위해 여러 사람이 오랫동안 매달려 토론하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 보통 며칠에서부터 일주일 정도까지의 기간에 수단과 목적 제한 없이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결론을 도출한다. 최근엔 페이스북, 구글 등 인터넷 기업들이 이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