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 심한 의사는 ‘NO’, 변호사·회계사는 ‘YES’… 은행 대출, 전문직도 급이 있다
입력 2011-06-07 21:19
한의사 A씨는 3년 전 5억원의 대출을 받아 서울 강북에 한의원을 냈다. 하지만 주변에 한의원이 우후죽순 생기면서 하루 평균 환자가 20여명에 불과해 간호조무사 월급이나 임대료 등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A씨는 지난해 대출금 연체가 길어지자 빚을 다 갚지 못한 채 한의원 문을 닫았다. 최근 월급쟁이로 모 병원에 들어간 A씨는 “매달 은행으로 들어가는 돈만 200만원이 넘는다”고 한숨쉬었다.
수도권 내 모 대학병원 피부과 전공의(레지던트) 3년차인 B씨는 빚만 1억원이 넘는다. 학자금 대출에다 레지던트로 전환되는 중간 휴식기 동안 마이너스통장을 통해 여행 등 유흥비로 쓴 돈이다. 그런데도 한 은행에서는 담보를 설정하면 3000만원까지 가능하다며 대출을 권유했다. 월급은 여전히 300만원을 넘지 못했다.
은행권이 전문직 고객을 가려서 받고 있다. 특히 경쟁이 치열해 폐업이 잦은 의사와 비의사 전문직 간 차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의사 중에도 진료 과목에 따라 은행의 대우가 천차만별이다. ‘사’자만 들어가면 은행에서 우대받는 시대가 저물고 있다.
◇닥터론은 줄고=KB국민, 하나, 신한, 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은 10∼15년 전부터 닥터론을 취급하고 있다. 그만큼 의사 직종이 갖는 신용도가 확실했기 때문. 개원 목적으로 대출받는 닥터론은 일반 대출상품보다 높은 대출금액에 금리도 낮은 편이다.
하지만 지난해 중소병원 1500여개가 문을 닫자 은행들은 대출 한도를 축소하는 등 연체율 관리에 나섰고, 이후 대출은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7일 은행권에 따르면 4대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의사 전용대출 잔액은 지난해 1분기 4조1174억원에서 올 4월 기준 3조9872억으로 하락했다. 신한은행을 제외한 은행 3곳의 의사 대출실적은 같은 기간 평균 5∼10% 정도 하락했다.
중소병원들의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경영난이 가중돼 폐업이 늘자 은행들이 의사 대출을 기피하는 것이다. 같은 의사라도 차별을 받고 있다. 소위 경쟁이 심하고 돈 안 되는 업종의 의사는 은행 문턱이 훨씬 높다. 하나은행은 지난해부터 한의사의 개업자금 대출을 대폭 줄였다. 외환은행은 잘나가는 피부과, 성형외과에 대한 대출한도가 3억원인 반면, 내과 등 일반의는 1억5000만원으로 한도가 절반에 불과했다.
◇전문직우대론은 늘고=의사와 달리 변호사, 세무사, 회계사 등을 위한 전문직우대론 실적은 증가 추세다. 4대 시중은행이 취급하는 전문직 관련대출(닥터론 제외)의 잔액은 지난해 1분기보다 올 4월 현재 1500억원가량 늘었다. 일부 은행은 미래의 우수고객 확보 차원에서 내부 기준을 완화해 개업 목적이 아닌 사법연수원생이나 법학전문대학원생, 의대생들에게 재직증명서나 소득 증빙서류 등 없이도 수천만원대의 대출을 해주기도 한다. 오히려 일부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예비 전문직’에 대한 대출 확대가 자칫 신용불량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의사, 변호사 등 자격증이 있다고 무조건 성공하는 시대는 끝났다”면서 “예비 전문직의 경우 고액을 대출받은 뒤 재정관리가 미숙한 상태에서 또다시 추가 대출을 받는 경우도 많다”고 우려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