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조 규모로 커진 ‘사모펀드’ 로비에 치명적 약점… 부산저축銀 투자로 논란

입력 2011-06-07 18:24


KTB자산운용의 ‘KTB-SB 사모펀드’가 부실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투자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모펀드(PEF·Private Equity Fund)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내에 도입된 뒤 급성장해 최근 세계적 기업인 ‘아큐시네트’를 인수하는 쾌거도 이뤘지만, 로비에 취약한 구조 등 부작용도 여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모펀드는 공모펀드와 달리 50명 미만의 소수 고액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저평가된 기업을 사들인 뒤 이를 매각해 수익을 얻는 펀드 유형을 말한다. 7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국내에 등록된 사모펀드는 모두 167개, 투자 약정액은 28조9000억원이다. 사모펀드는 2004년 12월 구조조정 촉진·투자수단 다양화를 위해 국내 도입이 결정된 뒤 개수와 투자 약정액이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최근 3년간 펀드 수는 104개, 투자 약정액은 17조6000억원이나 늘어났다. 지난달에는 미래에셋 사모펀드가 휠라코리아와 함께 해외의 쟁쟁한 사모펀드들을 모두 누르고 ‘타이틀리스트’라는 세계 1위 골프용품 브랜드로 유명한 아큐시네트를 인수했다. 당시 김석동 금융위원장은 “사모펀드 제도를 만들 때 엄청난 비판과 견제를 받았지만 드디어 이런 날이 왔다”며 “이게 바로 사모펀드의 힘”이라고 자축하기도 했다.

양적으로 빛나는 성장을 보인 사모펀드지만 질적인 면에서는 그늘도 존재한다. 자금 운용에 대한 규제가 적고, 투자자와 투자 비중 등이 철저히 비밀로 유지되기 때문에 로비에 취약하다는 점에서다. 사모펀드는 펀드 내 종목당 10% 편입 제한 규칙(10%룰)도 적용되지 않고, 공시 의무도 없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는 “사모펀드는 학연·지연으로 얽힌 경우가 많고 투자금 회수를 위해 로비를 개입시키기도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삼성꿈장학재단과 포스텍에서 각각 500억원씩을 유치해 부산저축은행 유상증자에 참여한 KTB자산운용도 사모펀드를 통한 투자 과정에 학맥을 동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출한도 등으로 우방 인수자금이 부족했던 C&그룹도 2004년 우리 사모펀드에서 420억원을 투자받으며 로비 의혹이 일어 곤욕을 치렀었다. 지난달에는 유명 공연기획사 대표가 사모펀드 운영자와 짜고 132억원을 횡령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입힌 사실이 검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일부 사모펀드의 문제를 인정하면서도 섣불리 규제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규제를 강화하다 보면 특정 소수 전문 투자자를 위한 사모펀드의 특성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일부 부정적 측면 때문에 제도의 특성을 모두 공모펀드처럼 바꿀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시장연구원 김재칠 펀드·연금실장은 “로비 등 부작용은 사모펀드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투자자의 문제”라며 “책임의식과 전문지식이 없는 이들은 사모펀드 투자를 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