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고상두] IMF를 구제할 한국인 총재

입력 2011-06-07 17:52


이번 주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후보 등록기간이다. 프랑스는 크리스틴 라가르드 재무장관을 유력 후보로 내세웠다. 마땅한 대안이 없는 독일 정부는 프랑스 후보를 지지하고 있는데 이에 대한 비판이 독일 내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독일은 유럽국가 중에서 국제기구 기여금을 가장 많이 내는 나라다. IMF에서도 미국 일본에 이어 세 번째 대주주다. 하지만 IMF, 세계무역기구(WTO) 그리고 유럽중앙은행의 수장이 모두 프랑스인이다. 국제무대에서 프랑스가 유럽을 대표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도 독일과 비슷한 반성을 하고 있다. 전후 수십년 동안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했지만 일본인이 국제기구를 이끌 기회는 거의 얻지 못했다는 것이다.

1944년 세계은행과 함께 자매 금융기관으로 출범한 IMF의 총재직은 유럽인이 맡아오고 있다. 이러한 유럽의 독식 관행이 시대에 맞지 않는다며 신흥경제국들이 비판하고 나섰고, 멕시코 남아프리카공화국 카자흐스탄 등이 후보 지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금융위기 극복한 풍부한 경험

IMF는 지구사회의 마을금고다. 187개 회원국의 출자금으로 마련된 공동기금을 운용하면서 외환이 바닥난 나라에 급전을 빌려주는 역할을 한다. 외환 부족으로 대외 채무지불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의 일시적인 유동성 문제를 해결해주는 것이다.

이처럼 좋은 일을 하는 IMF가 70년대 이후 비난의 대상이 됐다. 급전을 빌린 국가들이 상환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하자 IMF가 채무국을 환자로 취급하고 의사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 것이다.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경제체질 개선을 요구하는데 주로 재정지출 축소, 금융 자유화, 민영화 등 신자유주의적 처방이고, 수술을 받는 채무국 국민의 사회적 고통이 매우 크다.

한국은 IMF를 이끄는 데 필요한 경험을 풍부하게 가진 나라다. 독일 속담에 “나이가 많아지면 현명해진다”는 말이 있다. 경험이 많으면 문제 해결 능력이 향상된다는 뜻이다. 한국은 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만성적 외채 위기를 경험했고, 80년대에 신흥경제국으로 부상했으며, 97년 IMF 금융위기를 단시일에 졸업했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를 가장 먼저 극복했다. 환율전쟁 와중에 주요 20개국(G20) 회의를 주재하면서 이해 당사국 간 대화와 조정을 유도해 환율전쟁을 잠재우는 데 기여했다. 한국 출신의 IMF 총재는 구제금융 수혜국 처지를 가장 잘 이해하고, IMF에 대한 개도국의 지지와 신뢰를 회복하는 데 성공할 것이다.

세계화 시대에 국가보다 초국가적 국제기구의 영향력이 더 커지고 있다. 따라서 국제기구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것은 국제사회에 봉사하는 일인 동시에 국익 증진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기여외교’의 실천자원에 대한 개념이 확대돼야 한다. 돈과 군사력뿐만 아니라 인적 자원, 특히 국제적 리더십을 갖춘 인재를 통해 세계의 평화와 번영에 기여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지식과 교육을 중요시하는 한국사회의 특성에 적합한 기여방식이다.

조정·중재에 충실할 수 있어

국제기구 진출은 국력에 비례한다. 국제기구의 고위직과 실무직에 한국인이 많이 진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국제 인사정책이 필요하다. 우리의 재정적 기여도에 합당한 실무직 채용지분을 확보하고 있는지 전수조사를 해야 한다. 국정운영 경험과 국제적 역량을 갖춘 고위 공직자 풀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국가적 차원에서 밀어줘야 한다.

한국인 유엔 사무총장이 배출된 후 우리 사회에서는 글로벌 리더를 꿈꾸는 수많은 꿈나무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은 패권을 추구하지 않고 조정과 중재 역할에 충실한 나라로서 다른 나라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국가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외교적 강점을 적극 활용해 한국 외교의 지평을 국제기구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고상두 연세대 유럽지역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