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코너-김명호] 한국계 주한 미국 대사

입력 2011-06-07 17:40


지난해 겨울인가 한번 물어봤다. “시기가 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엔 주한 미국대사를 하긴 할 것 같은데….”

재밌다는 표정과 함께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글쎄, 그거야 높은 사람들이 결정할 일이고…, 근데 그렇다면 아주 영광스러운(honorable) 일이지.” 성 김 6자회담 특사와 웃으면서 농담으로 주고받은 말이지만 현실이 됐다. 그 당시는 그의 대사직 전출이 별로 검토되지 않던 때였다. 미국 상원의 인준 절차가 남아 있지만, 6자회담 특사(대사급)를 임명할 때에도 청문회를 거쳤기 때문에 통과에 별다른 장애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가을쯤부터는 한국에서 대사직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가 대사로 내정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국내 일부에서는 세상을 떠난 그의 부친의 전력(前歷)을 거론하며 문제 삼는 모양이다. 부친은 당시 주일대사관 정무공사로서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 납치사건에 일정 부분 관련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성 김이 두 차례 주한 대사관에 근무할 때부터, 특히 DJ 대통령 재임시절 국무부에서 한국 관련 업무를 할 때에도,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던 사실이 또 불거지고 있는 것이다.

표현의 자유가 있는 나라이니 그의 가족사를 놓고 이렇다 저렇다 얘기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다. 능력이 안 된다거나, 과거 한국과 관련된 언동에 문제가 있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도 이해가 된다. 하지만 납치사건은 1973년에 있었고, 성 김의 나이 겨우 13세 때의 일이다. 40년 가까운 세월 이전에 일어났던, 그것도 부친의 행위를 들이대며, 현재의 당사자를 비판하며 ‘부적격’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정당하지 못하다. 독재정권이 활용했던 연좌제와 다를 바가 없다.

이 같은 주장은 흠집내기이거나, 어떤 불순한 의도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는 상황이다. 그는 현재 미 연방정부의 유능한 외교관이다. 미 국무부에서 경력을 쌓고 실력을 인정받으며 커온 과정이 부친의 행위와는 전혀 관련이 없다.

성 김이 중량감 면에서 다소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51세로 나이도 젊고(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50세), 비중 있는 정치인이 대사인 경우에 비해 그렇다는 것이다. 시각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은 변하고 있다.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이 말했듯이, 미 외교는 스마트 외교를 지향하고 있다. 문화적 감성적 측면의 소프트 파워와 정치적 안보적 측면의 하드 파워를 합한 외교 개념이다.

성 김은 한국계로서 어느 누구보다 한국적 정서를 잘 알고 있다. 거기에 북한 전문가이다. 내년은 북한이 얘기하는 강성대국의 해이며 세습을 완결시켜야만 하는 해이다. 한국에서는 총선과 대선이 겹쳐 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도 본격적으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은 시점이다. 북한 변수와 동북아 안보 정세, 한·미의 새로운 경제 환경, 양국의 국내 정치 등 정치 안보 경제가 미묘하게 돌아가는 때이다. 당연히 한국과 미국은 서로 부탁하고 협조하겠지만, 때때로 갈등이 생길 여지가 많을 수 있다.

그런 시점에 백악관은 그를 선택했다. 백악관이 판단하기에 그는 주한 미 대사로서 소프트 파워적 접근과 하드 파워적 접근을 할 수 있는 인물인 것이다. 내년에 한반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기에 발탁했다는 뜻이다. 백악관은 초기에 언론에 거론된 몇몇 후보들에게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지 않았다고 한다.

요즘 말로 ‘쿨하게’ 살펴보자. 그는 대사로서 미국 이익을 최우선으로 대변할 것이다. 그게 가장 큰 임무다. 한국과 미국의 이익이 충돌할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를 통해 한국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할 여지는 역대 어느 누구보다도 많아 보인다. 다만 그가 한국계라는 이유로 섣불리 한국인의 정서로만 그를 대하려는 어리석음은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와 얘기해보면 참 솔직하고 건실하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가 주한 미국 대사직을 잘 수행했으면 좋겠다. 그게 어느 모로 보나 한국에도 도움이 된다.

워싱턴=김명호 특파원 m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