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경관보전지역 울진 왕피천] 천혜의 생태계·비경… 보호·관리 어려움 커간다

입력 2011-06-07 21:15


옛날 신라와 고려의 왕이 피신해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왕피천은 한반도 남쪽의 마지막 오지로 불린다. 환경부는 2000년대 중반 이후 왕피천 유역 가운데 경북 영양군 수비면, 울진군 서면과 근남면에 걸친 102.84㎢를 생태·경관보전지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생태 탐방로가 생기고 탐방객이 늘면서 이용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 올 들어 탐방예약제 도입 범위와 방법을 둘러싸고 환경부와 울진군이 미묘한 갈등을 겪고 있다. 환경부는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을 포함한 더 넓은 지역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경북 울진군 사람들이 그들의 처지를 비하해서 하는 말이 있다. “등더리가(등이) 가려븐데(가려운데) 오른손도 안 닿고, 왼손도 안 닿는 곳이 바로 울진 아닙니껴. 서울 부산은 물론이고 대구에서 올라 캐도 얼매나 먼데.”

교통이 좋아진 지금도 대구에서 울진 읍내까지 3시간 반은 족히 걸린다. 그런 오지 울진에서도 왕피천 유역은 남한에서 사람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가장 넓은 땅일 것이다. 왕피천 유역 생태·경관보전지역은 우리나라 38개 생태·경관보전지역 전체 면적의 25.8%로 가장 넓다.

◇생태적 가치=울진군 서면 삼근리의 환경부 대구지방환경청 왕피천환경출장소 본부에서 차를 타고 시멘트로 포장된 임도를 따라 한참 들어갔다.

보전지역은 102.84㎢다. 북한산국립공원보다 약 20% 넓다. 보존지역 곳곳에는 관리초소가 9곳 있다. 환경출장소는 관리초소를 운영하면서 보존지역에 들어가는 사람들을 일일이 점검한다. 자연환경보전법에 따라 생태·경관보전지역에서는 야생 동·식물을 포획, 채취, 이식, 훼손, 고사시키는 행위, 낚시 등의 어로행위, 지정장소 외 취사나 야영이 모두 금지돼 있다.

삼근리 초소에서 박달재를 넘어 굽이굽이 왕피리 삼거리까지 왔다. 차로 20분 이상 걸렸다. 여기서부터 핵심보전구역 안으로 들어간다. 속사마을까지는 민가와 논, 밭이 간간이 눈에 띈다. 주거지와 생태마을 등으로 구성된 전이구역이다. 환경부는 2005년 10월 핵심보전구역 45.35㎢를 먼저 지정했고, 이어 2006년 12월 완충보전구역 55.64㎢와 전이구역 1.85㎢를 포함시켰다.

왕피천은 영양군 수비면 금장산에서 발원해 61㎞를 흘러 동해로 들어간다. 침엽수림과 침엽수·활엽수가 함께 있는 혼효림이 잘 발달된 대령산(동), 통고산(서), 금장산(남)으로 구성된 왕피천 유역은 면적이 514㎢에 이른다. 국토환경성평가 1등급 지역이 70%에 육박한다.

당연히 야생동식물의 보고이기도 하다. 산양, 수달, 구렁이, 매, 흰꼬리수리(멸종위기 동·식물 Ⅰ급)와 하늘다람쥐, 삵, 담비, 큰고니, 고니, 말똥가리, 까막딱따구리, 흑두루미, 긴점박이올빼미, 새홀리기, 조롱이, 흰목물떼새, 개구리매, 잿빛개구리매, 산작약(〃Ⅱ급) 등 멸종위기 동식물 20종이 서식한다. 2008년 7월 자연환경 정밀조사 결과 1107종의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환경부는 보전지역 내 주민 1500여명으로부터 토지가 나오는 대로 매입한다. 환경출장소 관계자는 “원주민에게는 이렇다할 규제도 없는데다 다른 농촌과 달리 내놓는 집과 땅이 잘 팔려 오히려 좋아한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36가구에 51억원이 매입대금으로 나갔다. 전이구역 마을은 소규모 밭과 논을 경작하는 전형적 소농이다.

◇관리의 어려움=약 2년 전부터 탐방객이 늘어 한 해에 약 2만명이 다녀갔다. 그러나 대부분 여름 휴가철에 몰린다. 환경출장소 측은 보전지역에 출입하는 외부인에 대한 행위제한과 원활한 관리를 위해 주민으로 구성된 왕피천유역 환경감시단을 창설했다. 모두 92명의 감시원이 6개월씩 계절별로 돌아가면서 주5일제로 일한다. 이들은 관리초소에 배치돼 출입인원을 점검하고, 탐방객에게 행위제한사항을 알려주고 텐트, 취사기구, 불법 어로·수렵 장비가 있는지 확인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감시단원과 지역 환경단체의 말을 종합하면 탐방객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형식적 단속에 그치고 있다. 한 감시단원은 “배낭이나 가방을 일일이 열어 볼 수도 없고, 그런 사법적 권한도 없다”면서 “(불법행위가) 현장에서 눈에 띌 경우 처음에는 계도위주로 행위를 중단하도록 하고, 잡은 물고기는 풀어주도록 종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법당국에 넘기는 경우는 1년에 한두 건 있을까 말까라고 한다.

김승현 환경감시단 단장은 “여기에 와 봐야 텐트도 못 치고, 밥도 못 해 먹는다. 낚시는커녕 다슬기 한 마리도 주우면 벌금형에 처해진다”고 말했다. 김 단장과 환경출장소 관리요원들은 왕피천에서 여름휴가를 즐기기는 적합하지 않으니 옆의 군립공원인 불영계곡에서 놀기를 추천했다. 울진에 있는 녹색연합 활동가 배제선씨는 “주민들 얘기로는 생태탐방로 주변에서 텐트를 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예약탐방제를 둘러싼 갈등=환경부는 궁극적으로 예약탐방제를 운영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왕피천 환경출장소는 올해 초 이를 위해 자연해설 안내원(가이드) 3명을 채용했다. 그러나 울진군은 탐방예약제 시행에 앞서 탐방로의 안전시설과 교통과 진입로 등의 편의시설부터 갖추자는 입장이다.

환경출장소 이상석 팀장은 “우리는 보전지역 안에서만 탐방예약제를 실시하자는 것이고 군은 덕구온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불영계곡, 성류굴 등 주변 관광지와 연계해서 좀 더 오래 머무르게 하는 탐방예약제를 하자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춘기 소장은 “길을 내거나 탐방예약제를 하는 것은 결국 울진군이 주도할 것이고 우리는 환경훼손을 예방하는 쪽으로 협의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울진군 관계자는 “탐방예약제는 내년 시행을 목표로 준비 중”이라고 말했다.

녹색연합 서재철 국장은 “보전지역에 대한 자연자원 모니터링이나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면서 “탐방예약 가이드제부터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환경부 정연만 자연보전국장은 “왕피천 보전지역이 보전과 관리에도 성공하고 지역발전에도 도움이 된다는 여론이 형성되면 왕피천 유역을 포함한 울진, 영양, 강원 태백을 잇는 더 큰 지역을 대상으로 국립공원을 지정하는 방안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울진=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