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성형·대출 권하는 ‘탈선 지하철’… 칸칸마다 성형외과·대부업체 광고로 도배

입력 2011-06-06 19:52


서울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승강장 스크린도어에는 여성의 가슴을 훤히 드러낸 대형 사진이 걸려 있다. ‘마사지가 필요 없는 가슴 성형’을 홍보하는 병원 광고다. 김승주(39·여)씨는 6일 “지나갈 때마다 저 사진을 보면 불편하다”며 “지하철은 어린이와 청소년도 이용하는데 저렇게 노출이 심한 광고가 걸려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말했다.

3호선 압구정역 신사역 등 다른 지하철역 승강장도 각종 성형외과 광고로 도배돼 있다. 전동차 내에서는 거의 칸마다 성형외과 광고를 볼 수 있다. 지하철 병원 광고에 대한 특별한 규제가 없어 성형외과 광고가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다.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지하철 광고 단가가 올라 영세업체 광고는 줄어든 반면 수요가 많은 성형외과 광고는 계속 느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성형외과 광고는 의료법에 의해 심의를 받아야 하는데 지하철은 심의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병원 광고는 국민 건강과 밀접하고 대중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지상파 TV와 라디오에는 금지돼 있다.

인쇄매체와 현수막 등에 병원 광고를 하려면 대한의사협회 의료광고심의위원회로부터 사전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심의 대상에서 지하철은 빠져 있다. 현경병 한나라당 의원은 지난해 4월 의료광고 심의 대상에 지하철을 포함시킨 의료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아직 계류 중이다.

지하철 광고 대행업체 관계자는 “병원 광고는 사전 심의제 때문에 성사되기 까다로운데 지하철 광고는 사후 심의인데다 민원이 없으면 제재를 받지 않기 때문에 병원들이 선호한다”며 “안면윤곽, 코, 가슴, 척추 등 모든 성형업체가 지하철로 몰려들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가 운영하는 광고 자율심의위원회는 민원이 제기된 광고만 재심의해 사후 규제한다. 위원회가 올 들어 재심의한 광고는 3건뿐이다.

성형외과 광고 못지않게 많은 대부업 광고도 문제다. 대부업 광고는 지상파 TV에서는 국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돼 있고 인쇄물과 옥외매체에선 사전 심사를 받아야 한다. 그러나 지하철은 예외다. 서울메트로 관계자는 “대부업 광고를 금지할 법적 근거가 없다”면서 “다만 소비자를 현혹하는 표현을 썼는지, 등록된 대부업체인지를 확인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김사승 숭실대 교수는 “지하철은 남녀노소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이기 때문에 지상파 TV 수준의 광고 규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이선희 기자 sunny@kmib.c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