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2만명 시대의 ‘불편한 진실’… 최하층으로 전락해가는 모습 그린 ‘무산일기’
입력 2011-06-06 18:08
탈북자 2만명 시대, 탈북자는 과연 우리의 이웃이기나 한 걸까. 탈북자를 소재로 한 영화 ‘무산일기’(포스터)는 회의적인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다. 한반도평화연구원(원장 이장로 교수)이 4일 서울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 각계 기독교인 200명을 초청했다. ‘무산일기’를 접한 기독교인들의 반응은 어땠을까.
“영화 시작부터 끝까지 느낀 감정은 불편함이었다. 캐릭터들의 이중성, 탈북자와의 의도적인 거리두기가 바로 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영화가 만약 리얼리티라면 우리가 아무리 통일과 평화를 이야기한들 얼마나 허구 투성이인지를 아픈 마음으로 긍정해야 했다.”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박명규 원장의 고백이다. 박 원장은 영화가 끝난 뒤 열린 감독과의 대화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탈북자 전승철이 남한에서 살아가기 위해 하는 일은 벽보 붙이기. 일당은커녕 제대로 일을 못한다고 욕만 먹는다. 경쟁업체 직원들에게 걸려 죽도록 얻어맞기까지 한다. 형사의 도움으로 봉제업체에 취업해보려 하지만 주민등록번호에 붙은 탈북자 신분에 가로막힌다. 승철이에게 유일한 낙은 숙영씨의 얼굴을 보러 주일날 교회 가는 일. 하지만 교회에서도 왕따 신세를 면치 못한다. 마지막 장면, 승철의 유일한 친구였던 백구(개)가 차에 치여 비명횡사한다. 남한사회 구석 어딘가에 숨어 힘겹게 살아가는 탈북자의 비참한 현실을 고발하는 메타포다.
영화에서 주인공 승철을 직접 연기한 박정범 감독은 “함경북도 무산 출신의 승철이가 체육학과 후배로 들어왔을 때 동정과 연민으로만 바라봤지 친구로서 제대로 대해주지 못했다”며 “무산일기는 승철이에게 쓰는 나 자신의 반성문”이라고 밝혔다. 박 감독에 따르면 승철씨는 암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실제 그는 교회를 다니며 많은 도움을 받았다.
건국대에 다니는 한 탈북 대학생은 “주인공 승철처럼 아르바이트를 위해 이력서를 쓰면서 북한이 아닌 강원도에서 왔다고 쓴 적이 있다”며 “교인들의 동정의 눈길이 싫어 처음엔 교회를 안 다니기도 했었다”고 털어놓았다.
120분 동안 한눈을 팔 수 없었다는 탈북자 출신 강철호 새터교회 목사는 “실제 남한 내 탈북자들의 현실은 이보다 더 심각하다”며 “탈북자들을 수혜의 대상이 아닌 남북화합과 통일의 동역자로 보는 시선 교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무산일기는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과 뉴커런츠상, 마라케시국제영화제 대상 등을 수상했다.
김성원 기자 kernel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