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주목받는 ‘한은법’… 유례없는 ‘저지법’에 회기내 통과 진통 예고

입력 2011-06-06 21:30


한국은행에 단독조사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한은법 개정안이 이달 임시국회에서 통과할 가능성이 높아진 가운데 지난해 초 국회 정무위원회가 제출한 소위 ‘한은법 무력화 법안’에 대한 관심도 동시에 커지고 있다.

한은법 개정안과 함께 법사위에서 심사를 기다리고 있는 정무위 제출 법안명은 ‘금융위원회의 설치 등에 관한 개정법률안’. 하지만 이 법안은 정무위가 철저히 관할부처의 이익을 대변해 한은법 개정을 저지하기 위해 만들었다는 점에서 상임위 이기주의의 표본이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한은 지급결제 제도를 금융위가 접수?=‘금융위 설치 개정안’은 지난해 2월 정무위 소속 한나라당 김용태 의원이 대표 발의하고 여야 의원 11명이 서명, 발의한 안이다.

정무위 개정안에서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한은의 고유 권한인 지급결제 제도의 운영 등에 대한 사항을 금융위 소관 업무로 규정한 점이다. 이는 사실상 금융위가 한은의 지급결제 시스템을 감독하겠다는 의미다.

금융권 관계자는 “지급결제 제도는 안전성과 효율성이 최우선인데 이 분야의 전문지식이 없는 정부가 감독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이 조항이 한은법 개정안과 연계돼 있다는 점이다. 한은법 개정안은 한은이 원활한 지급결제 제도 운영을 위해 금융감독기구에 대해 민간 결제망 운영 기관과 한은망 참가 기관에 대한 공동 검사를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또 한은이 긴급히 여신을 하는 경우 유동성이 악화된 금융기관에 대해 제한적인 조사를 할 수 있도록 해 사실상의 금융기관에 대한 단독 조사권을 명시했다.

결국 한은법 개정안은 지급결제 제도의 원활화를 목적으로 만들어진 것인데 정무위 법안은 한은법 개정안의 핵심인 지급결제 제도를 금융위 소관으로 하자고 맞불을 놓은 셈이다. 정무위 법안대로 하면 한은법이 개정되더라도 정부의 감독·감시를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된다.

이에 따라 금융위 설치 개정안이 금융위와 금감원을 관할하는 정무위원회의 이기주의로 인해 발의됐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소속 위원들도 굳이 정무위 개정안이 한은법을 무산시키자는 의도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당시 이 법안에 서명한 한나라당 고승덕 의원은 “솔직히 정치적 맞불 법안 비슷한 것이어서 정무위 법에 큰 관심은 없다”며 “한은은 금감원 등과 제때 정보 공유만 잘 하면 되는 것인데 한은법은 기존 시스템을 흔들고 있다”고 한은법 개정안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한은법 개정안 통과 가능할까=민주당 정책위의장인 박영선 법사위 간사는 6일 “부산저축은행 사태가 금융감독의 문제로 일어난 만큼 더 이상 한은법 개정을 미룰 명분이 없어졌다”고 강조했다. 주성영 여당 간사 역시 감독 강화에 대한 여론의 요구로 어떤 형태든 한은법 개정안을 처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여야 간 온도차는 있다. 민주당은 법사위에 계류 중인 한은법 개정안을 그대로 가져가자는 입장인 반면 한나라당은 정무위의 ‘맞불 법안’까지 놓고 종합적으로 판단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의원 수를 고려하면 개정안 그대로의 통과가 쉽지 않은 셈이다. 법사위를 통과하더라도 최종 관문인 본회의 벽을 넘기기도 간단치 않다.

한은 관계자는 “조직 내에서 한은법 개정안이 원안대로 통과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많지 않다”면서도 “금융위기 예방이라는 개정안의 명분을 국회에서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고세욱 기자 swk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