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채병조] 우리는 서로 빚진 사람

입력 2011-06-06 17:40


우리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삶을 살아가는 동안 누군가에게 크고 작은 빚을 지게 된다. 태어난 후 어른이 되기까지, 그리고 생을 마감하기까지 직간접적으로 많은 빚을 지게 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진 빚을 모르거나 간과하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예를 들면 학창시절 공부를 잘해서 장학금을 받은 것이나, 회사를 세우고 사업이 잘되어서 돈을 많이 벌었을 때 자신만이 잘해서 그렇게 되었다고 당연한 일로 생각한다면 그러한 경우가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절대적으로 잘못이다. 왜냐하면 공부를 잘해도 제공하는 곳이 없으면 장학금을 받을 수 없고, 종업원들이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사업이 잘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결국 누구에겐가 빚을 지게 되는 셈이다.

내가 그러했다. 집안 형편상 대학진학을 만류하시던 아버지의 뜻을 뒤로하고 갖은 노력 끝에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수가 된 후, 어느 날 돌이켜 보니 내 노력 못지않게 주변의 도움이 많았음을 알게 되었다. 빚진 자가 된 것이다. 단순히 내가 열심히 살아온 결과라고 생각했던 지난날의 모든 생각들이 부끄럽게 느껴졌다. 학창시절 장학금을 받아 학업을 지속할 수 있었으며, 박사과정은 직장생활과 병행하느라 너무나 힘들게 학위를 취득하여 교수가 될 수 있었다. 이 모든 것들이 내가 힘들 때마다 물심양면으로 나를 도와준 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세상은 혼자 살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 했고, 서로간에 관계를 맺고 살아가게 되며, 당연히 서로 도움도 주고받게 된다. 그래서 빚진 자가 생겨나게 마련이다. 빚진 자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말하자면 채무자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채무자임에도 불구하고 채권자 행세하는 사람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왜 이렇게 험악한 세상이 되어 가는지 안타까울 뿐이다.

복잡한 현대생활에서 모든 사람들과 온전한 관계를 맺고 살아가기란 쉬운 일이 아니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자신이 겸손한 생각으로 ‘빚진 자’라고 여기면 관계는 좋아질 수 있다. ‘흘휴시복(吃虧是福)’이란 말이 있다. ‘손해를 보는 것이 곧 복이다’란 뜻이라고 한다. 남을 배려하고 감사하며 살아가는 작은 생각이 결코 손해 보는 것이 아니라 궁극적으론 득이 된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서로가 빚진 자로서 그 빚을 갚는다는 생각과 더불어 형편 되는 대로 베푸는 삶을 산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더욱 살맛나게 될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 부부 간에 서로 채권자라고 싸우면 자녀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 사회집단에서도 그룹 간에 집단 이기적 불협화음이 심해지면 누군가 손해를 보게 된다. 늘 그래왔지만, 요즘 이런저런 문제로 세상이 유난히 시끄럽다. 모두가 빚진 자의 자세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도록 노력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다.

채병조 강원대 동물생명과학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