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저축은행 국정조사 결과도 뻔하다
입력 2011-06-06 17:40
“현 정부가 PF(프로젝트파이낸싱) 대출 문제를 제대로 감독하기는커녕 짝짓기를 통한 대형화를 유도해 저축은행을 공멸위기로 몰아갔다.”(민주당)
“저축은행 사태의 뿌리는 김대중 정권 시절의 예금보호한도 상향조정과 저축은행 명칭 변경, 노무현 정권 시절 8·8클럽 제도 도입에 따른 PF 대출 증가에 있다.”(한나라당)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된 국회 국정조사가 벌써 시작됐다? 천만의 말씀. 지난 4월 20일부터 이틀간 진행된 저축은행 청문회 모습이다. 여야 간에 전(前) 정부와 현(現) 정부를 겨냥한 책임 추궁이 격렬하게 벌어졌다. 소모적 정치공방이었다. 물론 한 가지 수확은 있었다. 민주당 신건 의원의 지적으로 부산저축은행 영업정지 직전 대규모 인출 사태가 공개됐다는 점이다. 후폭풍도 거셌다. 하지만 이를 빼놓고는 알맹이가 없었다.
여야의 저질 폭로전 可觀
지난 2일 국회 정치분야 대정부 질문은 정말 가관이었다. 몇몇 의원들이 전·현 정부 책임론을 부각시킬 의도로 무차별 폭로전을 전개했기 때문이다. 구체적 근거도 없이 상대 당 주요 인사들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리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면책특권 뒤에 숨어 3류 저질 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우리 국회의 후진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 ‘묻지 마 폭로’가 사실이 아니라면 당사자들이 어떤 형태로든 책임을 져야 할 일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국민이 차기 총선에서 심판하는 수밖에 없다.
여론의 비판을 의식한 듯 한나라당과 민주당 원내대표들이 신사협정을 맺었다고 하지만 그것 역시 우습다. 상대 당 의원의 비리 의혹에 대한 발언을 할 때는 사전 확인절차를 거치기로 했다는데 어느 의원이 의혹 내용을 순순히 시인하겠는가. 오히려 검찰에 확인하는 절차를 밟는 게 낫겠다.
저축은행 사태에 대해서는 명확한 진상 규명을 하고 근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2001년 예금보호한도가 오르고 신용금고에서 저축은행으로 간판을 바꾼 이후 급성장하다 PF 부실로 퇴출 위기에 몰리기까지 10여년간의 적폐를 뿌리 뽑아야 한다. 이 지경이 된 본질적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헤쳐야 하는 까닭이다. 얽히고설킨 저축은행과 감독당국의 비리 사슬구조도 만천하에 밝혀야 한다. 그래야 재발 방지책을 세우고 서민 예금주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수 있다.
그럼에도 정치권은 정쟁 일색이다. 전·현 정권 책임론이나 무차별 폭로전 등에 사활을 걸었다. 지난 주말 심야토론 방송에 나온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원내대변인들도 구태의연하게 네 탓 공방을 재연했다. 뭐 묻은 개가 뭐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다. 전 정권에서 현 정권에 이르기까지 정책 실패와 감독 부실 및 비리 커넥션이 낳은 총체적 합작품이 바로 저축은행 사태다. 어느 정권의 잘못인지를 따지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과거와 현재의 허물을 그대로 드러내놓고 여야 모두 국민 앞에 용서를 구해도 모자랄 판에 남 탓만 한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으니
이런 식이라면 여야가 국정조사에 합의한 게 무슨 소용이 있는가. 국정조사를 해봤자 그 결과는 뻔할 뻔자다. 음해 비방 삿대질 등 수준 이하의 이전투구만 벌이다 파행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물론 이전에도 국정조사 무용론은 팽배했다. 13대 국회 이후 지금까지 이뤄진 국정조사가 20여건이지만 1988년 5공 비리 청문회 외에는 기억나는 게 별로 없다. 오히려 의혹만 부풀리다 끝나기 일쑤였다.
작금의 흐름을 볼 때 여야의 난타전은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검찰 수사에 물타기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칼끝이 정치권을 직접 겨냥하자 수사의 물줄기를 돌려보겠다는 속셈이 없지 않겠다. 오늘 벌어지는 국회 경제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도 저급한 폭로가 난무할 게다. 국정조사의 예고편이다.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권의 치졸한 싸움이 한심스럽다.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