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남형두] 방통위, 선정보도 폐해에 눈을 떠라

입력 2011-06-06 17:42


“TV의 유명인 자살 보도는 시청자 보호 차원에서 엄격하게 규제되어야 한다”

한 달이 멀다 않고 터지는 유명인들의 자살 뉴스로 정신이 혼미하다. 너무 자주 발생하다 보니 충격을 받아들이는 뇌중추신경계에도 굳은살이 박이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겠다 싶을 정도다. 그러나 자라나는 청소년이나 정신적으로 힘든 시기를 겪고 있는 사람들에게 언론의 정제되지 않은 자살 관련 뉴스는 또 다른 피해를 양산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세인들의 관심을 끄는 사람, 뉴스의 중심에 서 있는 사람이 사망한 경우 보도 대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이 자살인 경우 자살 장소, 동기, 수단과 방법 등을 소상히 보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특히 영상매체의 경우 종이매체보다 그 폐해가 훨씬 심각하다. 문자를 통해 의미를 인식하는 과정 없이 바로 시각을 통해 전달되는 영상의 충격은 더욱 자극적이기도 하거니와, 무엇보다 독자와 시청자는 매체 선택 및 일방적 수용 여부에서 다르기 때문이다. 예컨대 가족이 함께 TV를 보다가 이런 장면을 접하게 되면, 채널을 돌리기도 전에 봐버리게 되어 그야말로 ‘눈 뜨고 당하는’ 경우가 있다.

서구의 학자 중에는 자살 관련 선정 보도로 인해 젊은 층의 자살이 번지는 것을 중세 유럽의 유행병에 비유하기도 한다. 그러나 유행병 확산의 원인 제공자가 되더라도 그 정확한 사실을 전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점에서 언론은 유행병 숙주와 차별된다.

감시자 및 전달자로서 언론의 역할은 국민의 ‘알권리’를 담보한다는 점에서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것이 타인의 중요한 기본권과 사회가 보호해야 할 중대한 가치와 충돌할 경우 일정 부분 제한될 수밖에 없다. 방송의 자유를 보장하되 그 내용을 일부 제한하는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은 그 점에서 마련된 것이다.

심의 규정은 시청자에게 지나친 충격이나 불안감, 혐오감을 줄 수 있는 내용을 방송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그중 하나로 ‘자살 장면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나 자살 방법을 암시하는 표현’을 들고 있다. 나아가 자살을 재연기법으로 다룰 때에는 지나치게 구체적이거나 자극적으로 묘사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모두 시청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도를 벗어난 자살 관련 뉴스로 인해 더욱 직접적이고도 큰 피해는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주변 지인들에게 발생한다. 쉽게 아물 수 없는 상처를 지속적으로 거론하고 헤집음으로써 이들에게 회복될 수 없는 상처를 주고 사회 복귀를 막기 때문이다.

이들에 대한 피해는 일반 시청자들이 입는 것과 달리 방송사에 대한 법적 책임까지 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원이 다르다. 실제 우리보다 오랜 방송 역사를 갖고 있는 외국의 사례를 보면 선정적 보도로 인해 피해를 입은 가족이 방송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가 많다. 잦은 소송과 손해배상판결은 방송사들로 하여금 성숙한 보도와 방송윤리를 만들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도 방송사들의 이런 선정보도를 막을 법적 제도적 장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방송법은 각 방송사에 자체 심의기구와 시청자위원회를 두도록 강제하고 있으며 실제 가동되고 있다. 외부인사로 구성된 시청자위원회는 자살 관련 선정보도에 대해 방송사에 시정요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사가 시청자위원을 위촉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그 실효성이 얼마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공기(公器)인 주파수를 분배받아 방송을 하는 방송사는 언제든지 그 허가가 취소될 수 있는 허가산업에 불과하다. 허가권을 쥐고 있는 방송통신위원회와 그 산하의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법이 부여한 권한으로 시청자들을 선정보도로부터 보호하고 유가족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보다 적극 나서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시청률 경쟁에 사로잡힌 방송사들이 선정보도를 스스로 알아서 절제하기를 기대하기란 백년하청이다.

방송의 주인은 방송사가 아니라 시청자라는 엄연한 명제 앞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자살 관련 선정보도에 대해 보다 엄정한 법집행을 해주기 바란다.

남형두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