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이흥우] 오디션에 빠지다
입력 2011-06-06 17:41
이 정도면 열풍이 아니라 광풍이다. 대한민국에 거세게 몰아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 얘기다. 케이블 방송이 불을 댕긴 오디션 붐에 공중파 방송까지 앞 다퉈 편승하고 있다. TV를 켜면 온통 오디션 프로그램이다. ‘오디션 공화국’이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어딜 가나 전국은 오디션 열기로 뜨겁다.
한 케이블 방송의 ‘슈퍼스타K’ 성공 이후 많은 아류작이 생겨났다. 이미 선보였거나 곧 선보일 프로그램까지 합하면 어림잡아 10여개나 된다. 저마다 새로움으로 포장하고 있지만 오디션 프로그램 특성상 포맷은 비슷비슷할 수밖에 없다. 경연 대상이 신인이냐, 기성이냐만 다를 뿐이다. 그런데도 시청률은 높다. 인터넷에서도 무슨 프로그램에서 누가 살아남고, 누가 탈락했는지가 주요 관심사다.
오디션 열기는 프로그램 참여자 수로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 10월 막을 내린 슈퍼스타K 시즌2에는 134만명이 신청했고, 이달 말 접수를 마감하는 시즌3의 신청자 수는 200만명을 넘을 것이라고 한다. 국민 100명 가운데 4명이 신청하는 셈이다. 얼마 전 끝난 ‘위대한 탄생’에선 매주 100만명 안팎의 ‘국민평가단’이 심사에 참여했다. 오디션에 직접 참가할 실력을 갖추진 못했지만 수준 미달의 참가자가 돼서는 안 된다는 평범한 사람들의 이심전심이 이처럼 높은 참여로 나타나지 않았나 싶다.
이런 류(類)의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옌볜의 이름 없는 클럽 무대에서 남의 노래나 부르던 스물두 살 조선족 청년 백청강의 코리언 드림과 스물여섯 환풍기 수리공 허각의 소원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을지 모른다. 노래 실력보다 비주얼을 갖춘 ‘아이돌’이 대접받는 요즘 가요계 풍토에서 두 청년이 기획사 문을 두드렸어도 이들을 받아주는 곳이 있었을까.
사람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에 열광하는 가장 큰 이유는 오로지 실력과 능력으로 평가받고, 평가하는 데 있다. 그 사람이 어느 지역 출신이고, 어느 학교를 나왔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내가 부대끼는 현실은 ‘강부자’니, ‘고소영’이니 하면서 능력이나 자질보다 지연, 학연 등 온갖 연줄이 우선시되고 있다 하더라도 여기에서만큼은 “그래선 안 된다”,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갈구와 확신이 사람들을 오디션 프로그램 앞으로 끌어당기는 구심력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이를 통해 이기는 게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이긴다는 지극히 평범한 진리를 되새기며 대리만족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민주당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한 공천 개혁의 하나로 지역구와 비례대표 공천에 슈퍼스타K 방식의 경선을 가미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당원투표와 국민선거인단 투표 외에 국민배심원 평가 제도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국민배심원들이 오디션을 통해 후보의 능력과 자질을 평가하면 그 결과를 일정 부분 공천에 반영해 국민의 참여와 선택 폭을 확대하겠다는 취지다. 국민 참여 비율이 높아지면 이에 비례해 공천 때마다 불거지는 공정성 시비는 줄어들기 마련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4·27 재·보궐선거 패배에 따른 민심 수습을 위해 지난달 5개 부처 장관을 교체하는 부분개각을 단행했다. 그러나 5·6 개각은 국민 눈높이에 한참 못 미쳤다. 개각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특정 교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졌고, 장관 후보자들의 불·탈법 시비도 끊이질 않았다. 후보자 신분으로 장관인 양 행세한 해프닝도 있었다. 정부 인사에도 오디션 제도를 도입했다면 후보자 반열에도 오르지 못했을 이가 상당수였을 것이다.
요즘 이 대통령은 공정사회를 자주 얘기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는 반증이다. 이 대통령은 저축은행 비리 문제를 거론하며 전관예우를 공정사회 기준에서 가장 배치되는 요인으로 꼽았다. 인사 기준이 능력과 자질이 아닌 연(緣)에 따라 흔들리면 이런 결과를 초래한다는 뜻이리라. 공정사회는 공정한 인사에서 출발한다. 대통령부터 가슴에 새겼으면 한다.
이흥우 선임기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