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나누는 사람들-(21) ‘사랑의 띠’ 복지협회 신충진 대표] 복지 사각지대 찾아 사랑 실천
입력 2011-06-06 17:36
순수 민간봉사 단체인 ‘사랑의 띠’ 복지협회 신충진(60·전남 순천시 해룡면 상삼리) 대표는 ‘복지 전도사’로 불린다.
신 대표의 봉사활동 반경은 거의 지역사회 전체를 아우를 정도로 넓다. 홀몸노인과 장애인, 다문화가정 주부 등 소외된 이웃을 더 많이 챙기고자 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를 통해 더욱 건강하고 아름다운 지역사회가 될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그가 사회복지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1994년 12월 25일 성탄절. 조계산 자락인 순천시 용수동 오지마을로 불우이웃 돕기 봉사활동을 나갔던 것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당시 80대 할머니와 단둘이 살고 있는 열두 살짜리 장애 소녀가 산골짜기 아래 초라한 초가집에 살면서도 해맑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을 돌아보게 됐다. 신 대표는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는 장애 소녀도 저렇게 밝게 살아가는 데 건강한 육체를 가진 내가 늘 주위 환경을 탓하며 불만을 갖고 산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할머니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자 “밑반찬을 보내주면 고맙겠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이후 함께 봉사를 갔던 4∼5명이 순번을 정해 요일별로 돌아가면서 밑반찬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체계적인 배달봉사 활동은 이듬해부터 이뤄졌다. 본격적으로 밑반찬을 전달하려면 모임체가 필요하겠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사랑의 띠’라는 봉사단체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 모임은 재산이 있거나 없거나, 배웠거나 못 배웠거나 따지지 않는다. 다만 차별 없는 밝은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너와 나, 그리고 모두가 하나 되자’는 데 뜻을 같이하고 있다.
창립 회원 5명은 주머니를 털어 밑반찬을 마련하고 하루에 1∼2차례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다니며 직접 배달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어렵게 생활하는 홀몸노인과 장애인 등 챙겨야 할 대상자들이 늘어났다. 봉사 일손도 부족했고 밑반찬을 마련하는 데 드는 비용도 많아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후원금 회원으로 참여해 달라고 호소할 수밖에 없었다. 밑반찬 배달봉사의 참뜻에 동참하는 이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지금은 매달 적게는 5000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내놓는 후원자가 무려 500명을 넘는다.
연간 후원금도 4700만∼5000만원에 달한다. 신 대표는 후원금을 보태는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려 ‘사랑의 띠’를 투명하게 운영하고 있다. 2008년부터 후원금 사용 내역을 세세히 ‘사랑의 띠’ 카페에 올려놓고 있다.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어떻게 돈이 쓰였는지를 공개하기 위해서다.
현재 ‘사랑의 띠’는 65세 이상 홀몸노인 50여명과 다문화가정 주부 3명 및 장애인 등 모두 80여명을 돕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정부 지원을 받지 못해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그늘진 소외계층이다. 자식이 실직자여서 오히려 부담이 되고 있지만 그로 인해 정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된 경우도 있다.
신 대표가 이웃 사랑의 끈을 이어가고 있는 까닭은 자신의 어려웠던 성장 과정에서 비롯된다. 세 살 때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가정형편이 어려워졌다. 중학교를 겨우 마쳤지만 끝내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후 광주와 부산, 경남 하동 등을 돌아다니며 생계를 위해 식당과 철공소 등에서 닥치는 대로 일을 해야 했다. 하지만 ‘아는 것이 힘’이라는 생각으로 틈만 나면 책을 읽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1971년 군에 입대한 이후 미8군에 배속돼 영어공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각별한 경험이 됐다.
고향은 광주광역시지만 1975년 입사한 출판사 국민서관의 전남 동부권 책임자로 발령받으면서 연고 없는 순천에 정착하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한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1996년 퇴직했다.
‘사랑의 띠’를 결성하고 밑반찬 배달봉사를 하면서 사회복지 분야에 대한 공부를 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소외계층에 대한 봉사도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려면 전문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여겼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경야독으로 고교를 검정고시로 마친 뒤 서울사이버대학 노인복지학과를 거쳐 올 2월 순천대 사회복지대학원 석사과정을 졸업했다. 요즘은 순천제일대 등에서 사회복지학을 가르치는 교수(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개인적으로 매달 후원금 5만원을 내놓고 있다. 부인 박봉희(60)씨는 20만원을 후원한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일하는 큰아들 희운(34)씨와 작은 아들 희성(32)씨도 나름대로 후원금을 내놓고 있다. 그의 친족 10여명도 ‘사랑의 띠’ 회원으로 활동 중이다.
신 대표는 두 아들에게 항상 현장에서 체험하는 봉사를 하도록 당부하고 있다. 직접 밑반찬을 배달하고 집수리 봉사를 하면서 땀을 흘리라고 촉구한다. 현장을 통해서만 참된 봉사를 피부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란다.
적은 것이지만 이웃과 나누는 봉사를 ‘사랑’이라는 단어 한마디로 정의한 신 대표의 총 봉사시간은 순천시에 등록된 것만 1000시간이 넘는다. 그의 이 같은 봉사정신을 높게 평가한 자치단체 등에서 잇따라 표창장이나 감사패를 증정했다. 그동안 순천시장 표창 9차례와 전남도지사 표창 6차례, 순천경찰서장 표창 2차례, 시각장애인협회 감사패 등 모두 36차례 각종 상을 받았다.
하지만 그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이 모두 고운 것만은 아니다. 일부 사람들은 신 대표를 향해 ‘영양가 없는 사람’이라며 빈정거리곤 했다. 남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버는데 봉사한다며 궂은일에 앞장서느라 뭐해서 먹고사는지 모르겠다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그럴 때면 그는 “봉사를 통해서 영혼의 행복을 맛보고 있다. 봉사의 길을 걸으면서 공부를 한 덕분에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는 행운도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신 대표의 하루 24시간은 짧다. ‘사랑의 띠’ 관리는 기본이다. 6월과 오는 10월에 실시할 집수리 봉사 현장 확인과 후원자 찾기 계획도 차질 없이 세워야 한다. 간혹 자원봉사자에게 일이 생기면 대신 밑반찬 배달에 나서기도 한다.
그에게도 걱정거리가 하나 있다. “임기 3년인 ‘사랑의 띠’ 대표 자리를 2차례나 내놓았지만 맡고자 하는 이가 없었다”는 신 대표는 “행여 나에게 불행이 닥칠 경우 ‘사랑의 띠’를 맡을 적임자가 선뜻 나서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순천=이상일 기자 silee06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