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대 아이콘’의 귀환… 4인조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
입력 2011-06-06 17:39
‘들국화’ ‘어떤날’ 유재하 등의 음반이 발매됐고 조용필 같은 ‘국민가수’가 전성기를 구가한 시기. ‘소방차’ 김완선 같은 댄스 가수도 있었지만 ‘시나위’ ‘백두산’ 등 메탈 밴드도 인기였던 1980년대. 당시의 음악들은 우리 가요사에서 어떤 의미를 가질까.
대중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80년대 가요계를 이렇게 평가한다. “트로트부터 발라드, 록 음악까지 다양한 장르가 골고루 사랑 받은 시대였어요. 가수들의 개성도 뚜렷했죠. 뮤지션들이 자신의 개성에 충실한 음악을 만들다보니 질 높은 음악이 많이 나왔어요.”
‘세시봉 열풍’으로 70년대 음악이 재조명 받고 ‘나는 가수다’(‘나가수’)를 통해 90년대 인기를 끈 가수들이 다시 주목 받는 요즘, 80년대 인기가수인 강인원(55) 이치현(56) 권인하(51) 민해경(49)이 모여 프로젝트 그룹 ‘더 컬러스(The Colors)’를 결성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선배, 후배 가수들처럼 이들 역시 대중들의 관심을 다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할 수 있을까.
더 컬러스
지난 2일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에 위치한 ‘더 컬러스’ 소속사 ‘3355뮤직’ 사무실에서 팀 결성을 주도한 강인원을 만났다. 그는 최근 ‘나가수’에서 김범수(32) 박정현(35)이 각각 리메이크해 화제가 된 ‘그대 모습은 장미’ ‘비오는 날의 수채화’를 작곡한, 80년대 대표적인 싱어송라이터 중 한 명이다.
우선 ‘더 컬러스’로 작명한 이유를 묻자 “우리가 ‘세시봉’처럼 시대적 이름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색깔이 다른 사람들이 모였다는 의미에서 붙인 팀명”이라며 웃음을 지었다.
-‘더 컬러스’를 만들게 된 이유가 뭔가요.
“궁극적인 목표는 없어요. ‘함께 팀을 하면 재밌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만든 거예요. 그룹 결성을 계기로 다들 ‘다시 한 번 음악을 제대로 해 보자’고 다짐하고 있어요. 이런 과정을 대중들이 좋아해주시면 다행이죠. 그래서 돈도 벌고 인기도 얻으면 좋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아무 상관없어요.”
-‘더 컬러스’는 어떤 식으로 활동하게 되는 건가요.
“공연 중심으로 활동할 생각이에요. 4명이 나와서 노래자랑 하듯이 히트곡 부르고 들어가는 공연은 아니에요. 듀엣이나 중창 형태로 과거의 곡을 새롭게 해석해 들려드리는 거죠. 예를 들면 이치현의 ‘당신만이’를 레게로 편곡해 4명이 부른다든가, 민해경의 ‘그대는 인형처럼 웃고 있지만’을 권인하가 록 스타일로 노래하는 거죠. 객석에는 따로 진행자를 둬서 무대에 있는 가수와 서로 대화를 나누는 토크쇼도 진행할 겁니다.”
‘더 컬러스’ 멤버들은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합정동 한 합주실에 모여 연습한다. 다음달 17일, 경기도 수원시 인계동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여는 콘서트가 이들 활동의 출발선이다.
4명으로 시작하지만 멤버 구성은 앞으로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 강인원의 설명이었다. 80년대 함께 활동한 동료라면 ‘더 컬러스’에 들어오는 게 가능하다는 것이다. ‘더 컬러스’가 동료 가수들이 재충전하는 ‘둥지’가 되게 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아직은 ‘더 컬러스’만의 콘텐츠가 완성되지 않은 상황이에요. 서로 색깔이 너무 다른 게 문제예요. 만족도는 100점 만점에 30점? 앞으로 어떻게든 조화를 만들어내야죠.”
다음날 전화로 이치현과 권인하를 인터뷰했다. 이치현 역시 걱정이 앞서는 목소리였다. 그는 “솔로로 수십 년 동안 활동한 사람들이라 소리를 하나로 뭉치는 게 쉽지 않다”며 “하지만 음색이 다른 만큼 목소리가 뭉쳐지면 큰 매력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권인하 역시 “노래할 때 서로를 배려하며 호흡을 맞추는 게 다들 좀 미숙하지만 노력하면 완전히 새로운 그림이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80년대 음악, 그리고 지금
“80년대는 가요가 완성된 시기였어요. 고(故) 이영훈·유재하·김현식을 비롯해 최성원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우리 가요의 틀이 완성됐죠. 당시에 만들어진 노래의 가사나 멜로디를 보면 요즘 가요들이 따라갈 수가 없을 정도로 훌륭해요.” (권인하)
“음악이 전반적으로 풍성했고 좋은 노래가 많았어요. 특히 멜로디가 훌륭했죠. 80년대 가요들이 리메이크가 많이 되는 것도 이 때문이에요. 요즘 음악들은 지나치게 리듬 중심으로 만들어져요. 그런 음악도 필요하겠지만, 한쪽으로 너무 쏠려 있다는 게 문제죠. 중장년층 입장에서는 이런 음악만 미디어에서 나오니까 지칠 수밖에 없죠.” (이치현)
이들은 80년대 음악을 이렇게 자평하고 있었다. 실제로 80년대는 다른 시대와 비교했을 때 유독 명반이 많이 출시된 시기였다. 강인원은 “음악적으로 성취도가 높은 앨범이 많았던 것은 그만큼 사회가 뮤지션들을 대접해줬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80년대엔 TV에서 다양한 노래를 틀어줬어요. 그런데 90년대 들어서면서 몇몇 가수들을 중심으로 팬덤 현상이 강해지면서 미디어가 특정 장르의 노래만 틀게 됐죠. 미디어가 중장년층을 쫓아낸 거예요. 예전에는 좋은 음반이 나오면 ‘음악 좋다’고 했는데 요즘엔 ‘그렇게 만들어서 대박 나겠어?’라고 해요. 요즘 같아서는 ‘어떤날’ 같은 뮤지션이 나와도 음반 내기 힘들 거예요.”
저마다 지금의 가요계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내던 이들. 대화는 자연스럽게 ‘나가수’로 옮겨갔다. 강인원과 권인하는 “노래 잘하는 사람이 가수라는 것을 일깨워준 점에서 긍정적인 면이 더 많다”는 반응을 보였다. 반면 이치현은 “기성 가수가 왜 경연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PD가 불러주는 등수에 가수가 눈물 흘려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했다.
각기 다른 음색만큼이나 다양한 답변을 내놓던 이들도 80년대 가수들이 재조명 받는 시기가 곧 올 것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다. ‘세시봉’을 시작으로 중장년층이 비로소 음악을 ‘찾아 듣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일시적인 ‘복고의 바람’이 아닌, 아이돌 중심의 가요계 판도가 근본적으로 바뀔 것으로 내다봤다.
“중장년층이 경제적으로 여유를 찾기 시작하면서 자신들이 즐길 만한 음악을 찾기 시작했어요. 그동안 이들을 위한 음반 시장은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앞으로는 다를 겁니다. ‘더 컬러스’가 이런 변화의 또 다른 출발점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에요.”(권인하)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