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세대가 곱씹어본 ‘젊은 날’의 기억… 청춘 후일담 그린 연극 ‘돐날’
입력 2011-06-06 17:45
극단 작은신화의 ‘돐날’은 잃어버린 청춘에 대한 회한을 그린 연극이자 이제 더 이상 젊음이 아닌 386세대의 후일담이다. 2003년 초연 후 8년 만의 공연인데, 그때보다 더 어두워졌다.
지호와 정숙의 딸 돌잔치에 친구들이 집에 모인다. 그 하루 동안 지호·정숙의 집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이 친구들, 한때는 다들 정의나 민주주의를 외치던 청춘이었지만 지금은 회사원이거나 이런저런 사업가라는 이름을 직함으로 삼고 돈 이야기를 하며 살아가고 있다. 오직 지호만이 하는 일 없이 아내에게 빌붙어 살아가고 있다. 청춘의 이상은 가난 앞에서도 부 앞에서도 무력한 법이다.
극단은 ‘돐날’을 일컬어 30대를 그린 연극이라 밝혔지만 이 작품은 청춘을 기억하는 모든 세대가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등장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그려지는, 이상에 가득 찼던 젊은이의 모습은 현실 속 지호의 모습과는 너무나 대비된다. 지호와 정숙의 사랑도 초라하게만 그려진다. 권위적이면서도 무능력한 남편과 삶에 몸서리치는 아내의 갈등이 고조되는 순간, 지호의 옛 애인이자 정숙의 친구 경주가 등장하며 극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치닫는다.
기본적으로는 전통적인 연극의 문법에 충실한 작품이다. 냉정하게 느껴지리만큼 현실적인 이야기 구조를 갖췄으면서도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 건 배우들의 열연 덕이다. 배우들은 과장이나 인위를 전혀 섞지 않은, 자연스럽고도 격정적인 연기로 극을 완전히 장악했다. 상징적인 소품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한 연출도 정교하다.
8년 전의 공연과 비교하면 등장인물과 줄거리는 비슷하지만 결말 부분이 한층 우울해졌다. 초연에 삽입됐던 친구들이 지호에게 병문안 가는 장면이라든가, 릴케의 시 ‘가을날’도 삭제됐다. 관객으로 하여금 희망을 느끼게 할 만한 여지를 거의 남기지 않았다.
최용훈 연출은 “초연 때 시대상황과 비교해보니 지금이 그때보다 나아진 게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 좌절과 절망을 느끼게 되는 상황이라 결말을 그렇게 우울하게 처리했다”고 말했다.
길해연 홍성경 서현철 정승길 김왕근 김은석 등 출연.
3일 막이 올라 다음달 10일까지 서울 대학로 아트원시어터에서 공연된다. 부제는 ‘돐날, 돌아버리다’. 17세 이상 관람가로 티켓 가격은 2만5000∼3만5000원.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