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축은행 수사 어디로] 檢 “민주당 진보도 아니다”-민주 “수사 중단은 직무유기”

입력 2011-06-05 18:37

검찰은 국회의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기능 폐지’ 합의 소식에 한창 정점으로 치닫던 저축은행 비리 수사가 외부 압력으로 좌초될 위기에 처했다며 집단 성토했다. 정치권의 노골적인 수사 방해가 본격화된 것 아니냐며 격앙된 반응도 보였다.

정치권의 중수부 수사기능 폐지 소식이 전해진 지난 3일 저녁 일손을 놓고 술집으로 향한 중수부 수사팀은 정치권을 향해 울분을 토했다. 일부 참석자는 “중수부가 없어져도 우리는 남아서 이 사건을 끝까지 수사할 것”이라며 격한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수사팀의 핵심 관계자는 “지금까지 모피아를 제대로 수사한 적이 있었나. 이들의 비리 밝혀내려고 일하는 거 아니냐. 우리가 서민들 수사하는 것 아니지 않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모피아는 금융 당국 고위 관료를 빗대는 말로, 옛 재정경제부와 마피아의 합성어다.

다른 참석자는 “이른바 ‘귀족 검사’는 특별수사 못한다. 중수부 멤버들을 봐라. 다 시골 출신에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라고도 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민주당이 오히려 중수부 없애려고 하는 것 보면 그곳은 ‘진보’도 아니다. 우린 이념이 없지만 굳이 따지자면 좌파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은 김홍일 중수부장은 “입맛이 돌아오니 쌀이 떨어졌다”며 한탄했다고 한다.

수사팀의 다른 관계자는 “저축은행 수사는 금융 권력과 정·관계 인사 비리 파헤쳐서 서민에게 다시는 이런 피해가 없도록 하는 것 아니냐”며 “앞으로 참고인, 피의자들 누가 수사 협조하겠느냐. 도망 다니는 사람들도 조금만 더 버티면 될 거라고 생각할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사팀 핵심 관계자는 “10년 동안 중수부가 기소했던 국회의원이 90명이 넘는다. 이런 사람들이 자기들을 견제하는 중수부 없애겠다고 하는 게 말이 되느냐”고 공격했다. 검찰총장의 하명 사건을 수사하는 핵심 수사팀이 1년에 국회의원 10명꼴로 비리를 적발했는데, 일부 국회의원이 중수부 폐지 합의를 통해 선전포고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검찰은 지난 3월 부산저축은행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하면서 3개월 가까이 끌어오던 수사가 정치권발 역풍으로 물거품이 되지 않겠느냐는 우려를 갖고 있다고 한다. 수사팀 의지가 꺾인 상황에서 앞으로도 정상적 수사는 어려운 것 아니냐는 얘기도 나온다. 대검 관계자는 5일 “수사 검사들도 힘이 많이 빠졌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지호일 기자 blue5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