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문형 랩 시장 전운 감돈다
입력 2011-06-05 18:38
기존 증권사가 독식해왔던 자산관리 상품인 자문형 랩 시장에 시중은행이 뛰어들면서 은행과 증권사 간 물밑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을 시작으로 은행권은 이달 중 사실상 자문형 랩과 똑같은 ‘자문형 신탁(자문형 특정금전신탁)’ 상품을 일제히 판매한다. 자문형 신탁은 은행이 고객의 돈을 신탁 받아 투자자문사와 연계해 수익을 올려주는 상품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증권사보다 판로가 다양한 데다 확보하고 있는 VIP고객도 많아 증권사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나 은행권의 자문형 신탁 상품이 결과적으로는 전체 자산관리 시장을 활성화시킬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어 증권사들은 ‘기대반 우려반’의 심정으로 이를 지켜보고 있다.
국민은행과 외환은행이 지난 1일 자문형 신탁 상품을 내놓으면서 은행권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민은행은 창의, 브레인, 케이원 등 3개 자문사의 자문을 받는 ‘KB와이즈 주식특정금전신탁’을, 외환은행 역시 8개 자문사로부터 자문을 받는 상품을 각각 내놓았다.
이들 상품은 운용방식에서 기존 자문형 랩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시중은행은 증권사와의 비교 우위를 자신했다. 은행 관계자는 “상품은 증권사가 먼저 팔았지만 은행 역시 태동기부터 수십 년간 주식운용을 해왔다”면서 “기존 VIP 고객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치면서 판로를 확대하다보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도 “어차피 같은 상품이다. 자문형 랩과 딱히 차별화 전략이라는 걸 세울 필요가 없다”면서 사실상 영업력에 의해 성패가 갈릴 것이라고 전망했다.
신한·우리은행 등도 이달 중순부터 자체 브랜드를 가진 신탁 상품을 출시하며 본격적인 경쟁에 나설 예정이다. 그동안 은행들은 투자일임업을 할 수 없었지만 최근 은행에 ‘자문형 특정금전신탁 표준약관(계약서)’이 제정되면서 이 상품 출시가 가능하게 됐다.
증권사들은 은행의 경쟁적인 상품 출시를 두고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과도한 영업을 통한 출혈 경쟁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증권사의 이 같은 시선을 감안해 마케팅을 최소화한 채 지점을 통한 상품 판매에 주력하는 상황이다.
증권사들은 기존 노하우와 선진 시스템을 앞세워 은행을 따돌릴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증권사 관계자는 “은행의 자문형 신탁은 은행이 증권사에 매매주문을 하는 방식이어서 실시간 거래가 어렵다”면서 “은행에서 펀드 판매가 많지 않았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기존 은행 고객군 내에서 자금이 대체될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시중은행의 상품 판매로 인해 자산관리 시장이 커지게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창욱 토러스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증권사의 잠재고객이 일부 은행으로 이탈하겠지만 시장 확대로 인해 증권사에도 긍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며 “과거 은행이 펀드 판매를 시작했을 때도 같은 우려가 있었지만 결국엔 양쪽이 ‘윈-윈(Win-Win)’했었다”고 말했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