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신·제조사 혈투 예고… ‘가격파괴’ 바람불까

입력 2011-06-05 21:54


소비자가 통신사·단말기 직접 선택 ‘블랙리스트제’ 연내 도입

방송통신위원회가 올해 안에 ‘단말기 블랙리스트’ 제도를 도입키로 함에 따라 앞으로 휴대전화 유통 구조에 상당한 변화가 올 전망이다. 블랙리스트 제도란 도난·분실 등 문제 있는 단말기를 제외한 모든 단말기를 통신사 구분 없이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 그동안 휴대전화를 사용하기 위해 통신사가 유통하는 휴대전화만 선택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제조사에서 구입한 단말기에 원하는 통신사의 유심(USIM·범용가입자인증모듈)을 끼워 사용할 수 있다.

방통위 관계자는 5일 “조만간 통신사와 제조사, 연구기관이 참여하는 전담반을 구성해 도입에 필요한 세부 논의에 착수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제조사와 통신사들은 향후 블랙리스트 제도가 몰고올 파장을 가늠하며 준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유통 구조 나올까=제도가 시행되면 통신사가 독점하다시피 한 휴대전화 유통 시장이 통신사와 제조사라는 양대 축으로 재편이 불가피하다. 제조사들은 유통 방식을 놓고 고민 중이다. 삼성전자나 LG전자는 기존 자체 유통망을 이용하거나 전용 판매망을 따로 마련하는 방식 등을 고려하고 있다. 하지만 자체 유통망이 없는 팬택이나 외국 업체들은 통신사 판매망을 이용하거나 대형 유통업체를 통해 휴대전화를 공급할 수밖에 없다.

통신사들은 블랙리스트 도입에 반발하고 있다. 새로운 유통구조가 정착되면 그동안의 우월적 지위를 뺏기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고단말기나 제조사를 통해 구입한 단말기에 대한 보조금이나 요금 할인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이다. 한 통신사 관계자는 “블랙리스트가 도입돼도 제조사가 유통하는 제품에는 보조금과 약정할인 등의 혜택이 없어 결국 통신사를 통해 구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자들에게 어떤 혜택 돌아갈까=핵심은 바로 경쟁에 따른 서비스 개선과 단말기 가격 하락이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윤두영 연구원은 “단말기 시장과 이동통신 서비스 시장이 분리되면서 소비자 편익이 증진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소비자들이 제조사의 휴대전화를 직접 구매해 통신사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게 됨에 따라 통신사들은 소비자를 붙잡기 위해 서비스 경쟁에 나설 수밖에 없다. 그동안 소비자들은 통신사들의 약정이라는 올가미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또한 음성통화량이 적은 고객은 제조사에서 스마트폰을 구입한 뒤 1만2000원의 기본요금(표준요금제 기준)에 가입해 통신사들의 무선데이터 부가요금 상품을 이용하면 정액요금제에 비해 요금도 크게 줄일 수 있다.

다양한 유통 채널이 등장하면서 가격 경쟁도 촉발될 것으로 보인다. LG전자 관계자는 “새로운 유통구조 속에서 소비자가 혜택을 볼 수 있는 방향으로 출고가격 등을 설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대형 유통업체들이 판매시장에 적극 가담한다면 휴대전화 시장에도 ‘통큰시리즈’류의 가격 파괴 바람이 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고가 스마트폰의 경우 통신사들의 보조금 혜택이 없으면 거액의 현금을 주고 구매할 소비자가 많지 않기 때문에 전체 휴대폰 시장이 위축될 가능성도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제조사 관계자는 “출고가를 낮추고 제조사 차원의 할부 프로그램 등이 도입된다면 약정에 따른 이동통신사들의 할인 제도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