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발성골수종, 고령화 시대 ‘경계 1호’
입력 2011-06-05 17:17
대중가요 ‘이별’의 작곡가 길옥윤, 미국 월마트 창업자 샘 월튼,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부통령 후보 제럴딘 페라로. 이들은 ‘다발성골수종’으로 사망한 사람들이다.
대한혈액학회 다발성골수종연구회(위원장 이재훈 가천의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5일 “노인 인구가 늘어나는 고령화 사회에서 가장 경계해야 하는 난치병 다발성골수종이 잦은 방사선 노출과 다이옥신(고엽제) 등 환경호르몬의 증가로 급증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다발성골수종은 골수에서 항체를 생산하는 백혈구의 한 종류인 ‘형질세포’가 비정상적으로 증식하는 혈액암의 일종이지만 뼈가 있는 부위에서 잘 자라는 점이 특징이다. 그래서 65세 이상 고령 노인들 중에는 허리 및 갈비뼈 통증이나 척추압박 골절치료를 위해 병원을 전전하다 뒤늦게 발견되는 경우도 많다.
국립암센터 중앙암등록본부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우 요즘 연평균 1138명이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고, 774명이 이로 인해 숨지고 있다. 이에 따라 2001년 1776명이던 환자수도 2005년 2307명, 2007년 3627명, 2010년 4500∼5000명으로 불과 10년 사이 2.5∼2.8배나 증가했다.
성비는 1.2대 1로 남자가 조금 더 많다. 연령별로는 60대가 35.5%로 가장 많고, 70대 26.1%, 50대 22.1%의 순서다. 현재 평균 발병 연령은 66세로, 미국(70세)과 일본(71세)보다는 낮은 편이다. 그러나 이재훈 가천의대 혈액종양내과 교수는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 인구의 15.7%에 이르는 2020년쯤에는 이들 나라와 비슷한 수준으로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다발성골수종 환자가 이렇게 급증하는 이유는 혈액암 진단기술이 발전한 데다 발병위험계층인 고령인구가 계속 늘고 있고, 산업화에 따른 공해와 각종 질병의 진단 목적으로 방사선에 노출되는 일도 많아진 것이 가장 큰 원인이다.
혈액암 전문가들이 다발성골수종에 대해 흔히 ‘산업화와 고령화 사회의 그늘’이라고 비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교수는 “특히 벤젠, 다이옥신(고엽제), 포름알데히드 등 농약과 유기용제 사용 증가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발성골수종 환자가 가장 많이 호소하는 증상은 허리 통증과 갈비뼈 통증이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다가도 몸을 움직이면 심해지고, 움직일 때마다 아픈 부위가 이동하는 것이 특징이다. 또 빈혈로 무력감과 만성피로를 호소하고 혈소판 감소로 코피가 터지기도 한다.
그러나 전체 다발성골수종 환자 중 20%는 정기건강검진을 통해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는 판정을 받고서야 우연히 발병 사실을 알게 된다. 다른 암과 마찬가지로 몸으로 이상을 느끼기 전까지는 일정기간 무증상 상태로 소리 없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50세 이상 장·노년층은 뚜렷한 원인을 알 수 없는 빈혈이나 신장기능 이상, 뼈 통증, 압박 골절 등이 생기면 혈액검사를 받아봐야 한다. 형질세포에서 분비되는 ‘M-단백’이라는 이상 단백질이 핏속에 증가돼 있을 경우 다발성골수종이 의심된다.
치료는 항암제 위주의 화학요법을 기본으로 조혈모세포이식술과 방사선 요법을 병용하는 방법으로 이뤄진다. 이 교수는 “최근 벨케이드, 레블리미드 등 항암효과가 높으면서 부작용은 적은 신약의 등장으로 다발성골수종 치료에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전했다.
조혈모세포이식술은 고용량의 항암제를 투여하고 미리 채취해 둔 환자 본인, 또는 다른 사람의 건강한 조혈모세포를 다시 이식하는 치료법이다. 방사선은 대개 증상 완화를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