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세원] 자연이 주는 선물
입력 2011-06-05 17:38
며칠 전 관공서에 볼 일이 있어서 갔다가 마당 한쪽에 시골장터와 같은 직거래장터가 서 있기에 둘러보니 아주 다양한 상품이 나와 있었다. 평소에도 재래시장을 즐겨보던 터라 장도 볼 겸 둘러보는데 발걸음을 붙드는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강원도 산나물이었다. 몇 해 전 아는 분으로부터 근사한 선물을 받은 기억이 났다. 강원도에서 직접 채취한 곰취를 끓는 물에 살짝 데쳐 얼린 것을 아이스 팩과 함께 포장하여 택배로 보내주신 것이다. 마음과 정성이 담긴 귀한 선물을 냉동실에 넣어두고 가끔씩 꺼내 쌈장에 싸 먹을 때마다 입안이 행복했던 적이 있다.
깊은 산속에서 얻은 산나물은 맛이 더 깊다고 한다. 나물반찬을 워낙 좋아하던 터라 강원도 산나물을 보니 반갑기까지 했다. 호박고지나물, 고사리나물 등 여러 가지 말린 나물도 있었지만 계절이 계절인 만큼 아직 산의 정기를 가득 품고 있는 산나물에 눈이 갔다. 곤드레나물, 곰취, 참나물, 취나물, 머위… 그중에 산나물의 제왕이라는 곰취를 조금 샀다.
식욕을 돋우는 데는 약초나 다름없는 산나물이 최고라고 하는데, 나물 향을 잃지 않도록 약간의 양념으로 조물조물 버무려 무친 후 고추장을 넣고 밥을 비벼 먹으면 입안 가득 향이 그대로 퍼진다. 하늘과 땅의 기운을 받고 자연의 향기를 온 몸에 담고 자란 산나물의 맛을 무엇으로 흉내 낼 수 있을까? 농가월령가의 한 대목이 그 맛을 잘 알려준다. ‘묵은 산채 삶아내니 고기와 바꿀쏘냐.’
자연의 산물이라 그런지 산나물의 조리 또한 소박하다. 살짝 데치기도 하고 쪄내기도 하고 볶아내기도 하고 말려두었다가 묵나물로 무쳐 먹기도 하고…. 우리 땅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에, 손쉬운 조리법에, 몸에 이롭기까지 한 보배인 것이다. 토속적이고 해학적인 ‘나물타령’을 보면 산나물에서 풍기는 우리 땅의 정서가 느껴진다. “한푼 두푼 돈나물/ 매끈매끈 기름나물/ 어영꾸부렁 활나물/ 동동 말아 고비나물/ 줄까말까 달래나물/ 칭칭 감아 감돌레/ 집어 뜯어 꽃다지/ 쑥쑥 뽑아 나생이/ 사흘 굶어 말랭이/ 안주나보게 도라지/ 시집살이 씀바귀/ 입 맞추어 쪽나물/ 잔치 집에 취나물” 궁중의 반상에도 나물이 올랐겠지만 민중이 나물과 얼마나 친근하게 생활했는지 금방 느껴진다.
유난히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그만큼 자연의 먹거리도 많다. 건강에 관심이 많아지면서 요즘 사찰음식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데 사찰음식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산나물이다. 산나물은 주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특정 지역이 아닌 여기저기에 널려 있으니 부지런히 발품을 판 사람에게 거저 주시는 자연의 선물인 것이다.
요즘은 마트에서 조금 값이 비싸도 유기농을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하지만 오염되지 않은 먹거리로 산나물만한 것이 있을까 싶다. 깊은 산속 곰이 먹는다 하여 곰취로 불린다는데 이름과 달리 장터에서 사온 곰취의 향이 아주 은은하니 상큼하다. 나의 식탁에 자연의 선물이 오를 수 있도록 깊은 산에 들어가 수고했을 누군가에게 감사드린다.
김세원 방송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