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지방] 광화문 거리
입력 2011-06-05 17:45
세종로에 서서 광화문을 보았다. 검푸른 북악산을 등지고 우뚝 선 저 문이 600여년 지켜봤을 역사를 생각했다.
수많은 임금과 정의 행렬이 육조대로(세종로의 조선시대 이름)를 지났을 것이다. 임진왜란 때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 군대가 숭례문을 지나 유유히 진격해오는 장면 또한 광화문은 보았을 것이다.
아관파천 을미사변 등 망국의 슬픔이 맺혀 있는 곳도 여기다. 고종의 황제즉위식과 장례식 때 조선 백성들은 대한문 앞에 운집했다. 일제시대 이 거리는 ‘광화문통’이란 일본식 이름으로 불려야 했다.
6·25전쟁 때는 서울 수복을 위한 마지막 전투가 광화문을 사이에 두고 벌어졌다. 중앙청(옛 조선총독부 건물)에 태극기를 올리기 위해 국군은 동아일보 건물을 방어벽 삼아 세종로에서 인민군과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4·19 혁명 전날 고려대 학생들이 선거부정에 항의하다 테러를 당한 곳도 여기였다. 6·10 항쟁 때는 시청앞에 100만여명이 모였다. 2002년 월드컵 때 세계를 놀라게 한 길거리 응원이 벌어진 곳도 같은 자리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광화문 앞에서 대통령에 취임했다.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은 세종로와 광화문 앞을 지나 첫 출근을 했다(광화문은 이명박 대통령의 취임을 보지 못했다. 가림막 뒤에서 복원공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 사람들은 촛불을 들고 광화문 앞에 모여들었다. 미국 쇠고기 수입에 반대해 시민들이 모여든 곳도 이 자리였다. 2009년 두 전직 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을 때 시민들은 이 길에서 고인을 추모했다.
역사가 소용돌이칠 때마다 사람들은 세종로에 모였다. 그들이 바란 것은 자유와 평화였다. 자유를 잃었을 때 슬퍼했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여기서 싸웠다. ‘대∼한민국’을 외치며 자유와 평화를 맘껏 누렸다. 그때마다 역사가 새로 쓰이는 광경을 광화문은 지켜보았다. 오늘 현충일은 자유와 평화를 지켜준 호국 용사들을 기리는 날이다.
세종로 광화문 앞에 새로운 얼굴이 나타났다. 대학생들이 모여 ‘반값 등록금’을 외치고 있다. 학자금 대출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된 이들이 4년 만에 38배나 늘어 2만5000명이 넘었다고 한다. 무거운 등록금, 앞이 보이지 않는 삶. 청년의 미래가 위협당하고 있다. 이들이 광화문 앞에 모였다. 역사는 또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것일까.
김지방 기자 fatty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