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서승환] 가계부채와 하우스푸어

입력 2011-06-05 17:44


최근 한국은행 발표에 의하면 가계부채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800조원을 넘어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해에 비해 8.3% 늘어난 수치인데 최근 3년의 누적 증가율이 25%에 달하는 등 매우 큰 폭의 증가세가 지속되고 있어 염려가 커지고 있다.

이와 관련,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는 가계부채 증가가 우리 금융의 최대 위협 요인이며 특히 주택담보대출의 40% 정도가 주택매수를 위한 실수요가 아닌 투자나 소비목적에 있는 것으로 파악돼 앞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은행만 해도 가계대출 가운데 주택관련 대출 비중이 66%를 상회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이 사실보다 그 내용이 건전하지 못하다는 것이 더 우려된다. 작년 7월 이후 기준금리가 1% 포인트 인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의 대출금리는 4%대 후반에서 유지되는 등 기준금리와 대출금리가 따로 움직이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은행들이 여유자금을 주로 가계대출에 이용하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이다. 한국은행이 금리정책을 지나치게 보수적으로 수행한다는 비판이 있는 상황 하에서 이렇게 낮게 유지되는 대출금리는 필연적으로 과도한 차입을 초래하게 되는데 과도차입의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 주택관련 대출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최근 발표에 의하면 대출 원리금을 갚는 데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사용하는 ‘집 가진 가난뱅이’ 즉 하우스푸어(house poor)가 100만 가구를 상회한다고 한다. 이들 하우스푸어 중 8.4%는 원리금 상환이 아예 불가능하며 34%는 만기연장이 되어야만 간신히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하우스푸어가 양산된 이유는 무리한 대출로 집을 장만한 이후 집값은 떨어지고 금리는 올랐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행태가 문제를 더 심각하게 만든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주택담보대출의 84%는 원금상환 없이 이자만 내고 있다. 이자만 내면 되기 때문에 주택을 구입하는 시점에서 과도한 차입을 해도 몇 년 내 집값이 상당히 올라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면 상환에 별 지장이 없다. 문제는 현재와 같이 상당기간 동안 주택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거래도 부진한 경우이다. 이자만 내는 거치기간이 지나거나 금리가 상승하는 경우 지불충격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취약한 구조인 것이다.

하우스푸어들이 과도한 채무를 더 이상 감당하지 못해 손해를 감수하고 집을 내놓거나 상환불능에 빠져 애써 마련한 집이 경매로 넘어가는 일이 증가하면 금융시장이 불안정해질 수 있다. 주택관련 대출의 비중이 매우 높으므로 이러한 불안정의 여파는 생각보다 훨씬 더 클 수 있다.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하우스푸어의 붕괴가 중산충의 붕괴로 이어져 사회적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것이다. 하우스푸어의 붕괴를 막기 위한 단기대책이 시급한 이유이다.

이를 위해 2008년 법무부가 발의하였으나 아직도 통과되지 않고 있는 ‘통합도산법’ 중 개인회생제도와 관련된 일부라도 조기에 시행할 필요가 있다. 가계부채로 파산한 사람이 개인회생절차에 들어가는 경우 금융기관이 담보로 잡은 집을 함부로 경매에 넘기지 못하게 함으로써 채무변제기간이 다소 길어지더라도 집은 지킬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중산층을 튼튼하게 하고 공정한 사회를 이룩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주택담보대출을 고정금리 원리금 균등상환의 형태로 정착시키는 것이 근본적인 해결책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의 하나는 소득대비 집값비율이 지금보다 현저히 낮아야 한다는 것이다. 단기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거래 활성화를 위해 부동산 경기를 진작시키는 것을 최대한 피하면서 보금자리 주택 등의 공급을 착실하게 진행시키는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서승환 연세대 경제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