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시] 별

입력 2011-06-05 17:44

이병기 (1891~1968)

바람이 서늘도 하여 뜰앞에 나섰더니

서산 머리에 하늘은 구름을 벗어나고

산듯한 초사흘 달이 별 함께 나오더라

달은 넘어가고 별만 서로 반짝인다

저 별은 뉘 별이며 내 별 또한 어느 게오

잠자코 호올로 서서 별을 헤어보노라


개화기 시인으로서 현대적인 시풍을 확립했고, 국문학자로서는 많은 고전을 발굴하고 주해한 가람(嘉藍) 이병기 시조시인의 대표작. 달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로 간결하면서도 기품이 있다. 그 기품 때문에 서러울 듯한 서정이 서늘함으로 변한다. 오랜 세월 속에서 살아남는 시들의 공통점은 가락과 품격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어 독자들을 빨아들이는 데 있다고 본다. 쉬운 듯하면서도 개결(介潔)하고, 단순한 스케치인 듯하면서도 깊이가 있다. 서로 반짝이는 존재들, 그 속에서 내가 추구해야 할 위상은 어떤 것인지….

일전에 헤르만 반롬푀이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EU·일본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 일본 전통의 하이쿠(俳句)를 낭송해 눈길을 끌었다. 영어로 된 그의 하이쿠는 “세 가지 재해(지진·쓰나미·원전사고)가 있었네. 폭풍은 부드러운 바람으로, 또 새롭고 따뜻한 바람으로 변했네”라는 내용. 고난을 극복해가는 일본의 역동성을 부드러운 바람으로 노래했다. 세계 유명인들 가운데 일본 전통의 하이쿠 애호가가 의외로 많다. 우리의 시조는 교과서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임순만 수석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