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예수는 누구인가
입력 2011-06-05 17:23
(48) 휘장은 찢어지고
마가복음 15장은 절마다 골이 깊다. 걸어 들어가니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외침이 기록된 34절은 묵상을 하면 또 다른 깨달음이 들어 지난번 쓴 것만큼은 얼른 마음 그릇이 찬다. 알 수 없는 ‘큰 소리’를 전하는 37절엔 인류 역사의 축이 걸려 있고 존재 자체가 여기를 중심으로 돈다. 내가 말씀을 묵상하다가 언제부터인가 말씀이 나를 읽기 시작한다. 그 거룩한 흐름에 나는 그저 몸을 맡긴다. 해변을 걷다가 깊은 바다로 들어간 듯하다. 어떻게 그 깊은 물로 들어갈까 했는데 깊은 곳에서 한없이 부드러운 기운이 올라와 나를 받쳐 안아준다. 아, 나무 십자가다. 바다가 하늘과 닿는 곳이 저기 보이는가 싶더니 어느새 바다와 하늘이 한데 어우러진다.
말씀 묵상은 거룩한 수동성으로 들어가는 길이다. 내가 읽는 게 아니고 말씀이 나와 내 삶을 읽는다. 아니 말씀은 읽는 게 아니고 듣는 것이다. 말씀은 들려온다. 주님이 말씀해주지 않으시면 기다려야 한다. 천천히 말씀하시면 나 또한 그렇게 듣는다. 깨달음의 흐름이 급하게 굽이쳐 돌면 나는 어쩔 줄 모르며 몸은 휘청거린다. 가상 제8언 그 깨달음이 골짜기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데 숨 가쁘게 오르는 어느 곳에서 또 한번 큰 소리가 들린다. 38절 기록이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휘장은 성전 구조에서 둘 중 하나다. 성전 바깥뜰과 안마당을 구분하는 것이거나, 성전 안에서 지성소 곧 지극히 거룩한 곳을 가려놓은 것이다. 둘 중 어느 것이든 거기에 하늘 아버지의 뜻이 담겨있다. 성전 바깥뜰과 안마당 사이의 휘장은 이방인과 유대인을 가르는 경계선이다. 이방인은 더 이상 들어가지 못한다. 하나님이 선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신 백성만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심으로써 이방인과 유대인의 경계가 허물어졌다. 이제 국외자도 내부자도 없다. 누구나 하늘 아버지의 품 안에 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존재나 신분의 차이는 없다. 모든 사람을 만드신 하늘 아버지께서 모두를 안으신다.
첫 번째 휘장이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은 것이라면 지성소를 가린 휘장은 사람과 하나님을 구분한 것이었다. 지성소는 하나님이 계신 곳이다. 죄인은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갈 수 없다. 대제사장 한 사람만 거기에 들어간다. 그것도 속죄의 제사를 드려 자기 죄를 씻고서야 겨우 들어간다.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거짓이 있으면 들어가서 죽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경험하시는 그 순간 이 휘장이 위에서 아래까지 두 쪽으로 찢어진다. 이제 누구나 하늘 아버지 앞으로 갈 수 있다! 히브리서는 이 사실을 이렇게 해석한다. 10장 19∼20절이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
그러고 보니 마가복음 15장 38절은 내용을 다 말하지 않는다. 휘장이 찢어졌다는 게 결론이 아니다. 휘장은 찢어지고, 그래서 길이 생겼다는 것이다. 이제 누구나 하늘 아버지께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길을 예수님이 자신의 몸을 찢어 열어 제치신다. 마가복음 1장에서 예수님에게 하늘이 열리더니 이제 여기에서 모든 사람에게 하늘이 열린다.
지형은 목사 (성락성결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