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기리며… 老兵도 함정 사수 특명
입력 2011-06-03 21:23
안보 전도사로 나선 천안함재단의 해상훈련 체험 르포
어둠이 깔리는 서해바다의 정적을 가르고 날카로운 경보음이 울려퍼졌다. 지난 2일 오후 7시35분쯤 백령도 근해를 경비하던 순천함이 북한 경비정의 북방한계선(NLL) 침범을 탐지했다는 가상 상황을 기반으로 한 훈련이다. 함장의 전투배치 명령이 떨어지자 모든 대원이 자신의 위치로 뛰어갔다. 전투태세까지 1분도 걸리지 않았다. “북상하지 않으면 경고사격을 하겠다”는 경고방송을 듣고 북한 함정은 도주했다.
해상훈련은 천안함재단이 천안함 사건 희생자의 뜻을 기리고 안보의식을 고취한다는 취지에서 마련했다. 2∼3일 1박2일 일정으로 열린 안보체험에는 일반 시민과 천안함재단 관계자 등 32명이 참가했다. 해상훈련은 해군 제2함대가 있는 경기도 평택항을 출발해 백령도로 이동하면서 이뤄졌다.
시민들은 북한 경비정의 동향을 살피고 함정의 대포를 관리하는 해군의 임무를 직접 체험했다.
48년 전 해군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송헌일(72)씨는 함교(艦橋)를 지키라는 명령을 받았다. 송씨는 “60년대엔 미군이 퇴출시킨 함정을 개조해 사용했다”며 “이렇게 든든한 함정이 국산이라니 격세지감을 느낀다”고 했다.
참가자 중 최고령인 이희순(76)씨는 암 투병 중에 훈련에 참여했다. 손자뻘인 20대 장병과 순찰을 한 이씨는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도발을 보고 집에만 있을 수 없었다”며 “서해바다가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알릴 것”이라고 말했다. 참가자 대부분이 60, 70대 고령이었지만 털점퍼에 무거운 방탄조끼를 입어야 하는 선상 보초를 마다하는 사람은 없었다. 혹시 모를 적의 도발에 대비하는 이들 노병의 눈매는 매서웠다.
조용근(65) 천안함재단 이사장은 “천안함과 같은 급인 순천함에 승선해 희생 장병이 겪었을 노고를 직접 체험하고 싶었다”며 “배라는 고립된 공간에서 생활하며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천안함재단은 이번 행사를 안보체험 상품으로 개발해 수익금을 천안함 사건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생존 장병의 치료비 지원에 쓸 계획이다.
3일 오전 7시30분쯤 순천함 갑판에서 천안함 희생 장병에 대한 민군 합동 해상 추모 행사가 열렸다. 조 이사장이 “푸른 바다를 가슴에 품지도 못한 채 젊음을 바친 천안함 용사들이여, 고이 잠드소서”라는 애도사를 낭독했고 묵념을 마친 시민들은 바다에 국화를 던졌다. 평소 통일 문제에 관심이 많아 행사에 참여했다는 김복중(58·세무사)씨는 “국민이 힘을 모아 통일을 이룬 뒤에야 천안함 46용사의 넋도 편히 잠들 것”이라고 말했다.
순천함 함장 김승철 중령은 “작전 때마다 출동이 아니라 출전의 각오로 임하고 있다”며 “실전 대응 능력을 최우선에 두고 서해바다를 지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백령도=유동근 기자 dkyo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