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국민 저버리고 약사 기득권 지켜준 복지부
입력 2011-06-03 17:51
가정상비약의 슈퍼 판매가 약사 단체의 반발로 또다시 무산됐다. 정부는 2009년 의료서비스산업 선진화 과제 중 하나로 추진해 온 일반의약품의 약국 외 판매를 어제 백지화했다. 약사회 눈치만 보다 결국 백기를 든 셈이다.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80% 이상이 소비자 편의성 등을 위해 줄기차게 요구해 왔음에도 정부가 약사회에 굴복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국민 불편을 해소하겠다는 의지가 애당초 별로 없었던 것으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는 심야나 공휴일에 국민이 겪는 의약품 구입 애로사항을 없애기 위해 논의돼 왔다. 이를 실현하는 것은 사실 어렵지 않다. 약을 약국에서 약사에게만 구입할 수 있도록 규정된 현행 약사법을 개정하면 된다. 그럼에도 보건복지부는 우회로를 택했다. 24시간 의약품 판매가 가능한 특수장소를 추가 지정하는 방식을 추진했다. 이 역시 약사가 특수장소 내 대리인을 지정해야 가능한데 약사회가 이를 반대하면서 무산된 것이다. 대신 약사회는 ‘당번약국’을 확대하겠다고 했지만 그간의 경험으로 볼 때 실효성이 의심스럽다. 복지부가 허약한 것인지, 한심한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약사회의 반대 이유는 국민 건강의 안전성이라고 한다. 지나가는 소도 웃을 일이다. 평소 약사들이 복약지도를 할 때 ‘식사 30분 후에 드세요’ 하는 것이 거의 전부인데 국민 건강을 염려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리고 감기약, 소화제 등은 이미 안전성이 검증됐다. 오남용 우려도 별로 없다.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은 일반의약품 전체나 일부를 약국 외에서 자유롭게 판매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약사회의 반발은 기득권 지키기에 다름 아니다.
복지부는 앞으로 의약품 분류를 재검토해 약국 외 장소에서 팔 수 있는 ‘의약외품’ 항목을 늘리는 방안을 논의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의약외품으로 편입될 종류는 한정적이다. 게다가 이를 결정하는 중앙약사심의위원회 구성도 의사·약사 중심이라서 국민이 원하는 방안이 나오기 어렵다. 국민 기대를 저버린 복지부의 무책임이 너무 실망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