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당시 좌익분자의 딸 나미의 행적 쫓기… 전상국 열번째 소설집 ‘남이섬’

입력 2011-06-03 17:28


강원도 춘천 금병산 자락에 살고 있는 소설가 전상국(71·사진)씨는 근래 남한강이 굽이쳐 휘도는 경기도 가평 남이섬으로 여러 차례 답사여행을 갔다. 김유정문학촌장으로 공사다망한 와중에도 틈틈히남한강 물길을 따라 남이섬을 찾은 이유는 그곳을 진원지로 한 ‘나미’라는 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캐내기 위해서다. 올해로 등단 49년째에 접어든 그의 열 번째 소설집 제목은 그래서 ‘남이섬’(민음사)이다.

전직 잡지사 기자 출신인 ‘나’는 20여년 전 자신이 취재했던 김덕만과 이상호라는 두 인물의 증언을 떠올리며 나미의 행적을 쫓는다. 나미는 일제 당시 좌익분자였던 진 군수의 딸로, 진 군수가 전쟁 당시 이북과 내통한 혐의로 국방군 수색대의 총격을 받고 생사가 묘연한 가운데 최근까지도 혼자 남이섬에 살고 있다는 것이 증언의 골격이다.

“상호가 섬에 들어가는 날은 대체로 날씨가 좋았다. 안개가 껴 사위를 분간하기 어려운 오전에도 나미의 유혹을 받았다. 그러나 덕만은 주로 밤에 나미를 만났다. 물론 한 낮에도 섬에 들어가긴 했지만 그런 날은 어김없이 비가 내렸다.”(59쪽)

증언을 남긴 두 인물은 이미 작고하고 없다. 결국 ‘나’는 최근에도 나미를 보았다는 소문들을 스스로 확인해 나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나미는 잡힐 듯 하면 빗방울이 되어 내리는 남한강 안개 같은 존재다. 나미를 찾아 나섰지만 한번도 만나지 못했다는 것, 자신의 후배를 통해 들은 바로는 나미로 추측되는 여자가 얼마 전 물에 빠져 죽었다는 것, 지난 역사는 오늘에 와서 완전한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 그런데도 정작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신호음을 내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전상국이 들려주고자 하는 소설의 핵심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초기작인 ‘아베의 가족’을 통해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받아야 했던 상처의 이야기와, 그 상처의 고통을 함께 나누며 치유하려는 서사 기획은 전상국에게 있어서 지금도 진행형인 것이다.

한국전쟁 당시의 죽임과 죽음의 상처가 인상적으로 각인된 소설이 ‘남이섬’이라면, 살아남은 자들의 윤리를 인상적으로 강조한 작품이 또 다른 중편 ‘지뢰밭’이다. 작가는 이 소설에서 마음의 지뢰밭을 거두고 교감의 지평을 넓혀, 비극적 과거를 치유하고 희망의 미래를 기획할 것을 진정성 있게 제의한다.

전상국은 ‘작가의 말’에서 “‘남이섬’, ‘지뢰밭’ 등을 통해 뒤늦게나마 내 본래의 관심사 언저리에 돌아와 거울 앞에 선 것만으로도 큰 얻음”이라며 “나름의 소설 미학 찾기에 힘을 들였다”고 말했다. 칠순의 나이임에도 불구, 때로는 질퍽한 정념의 언어로, 때로는 후끈한 감성의 언어로 교감하고 삼투되면서 수사학적 상승효과를 발하는 단편 미학이 인상적이다.

정철훈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