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젠 ‘사나움’ 벗고 할배 되랍니다” 장편 ‘낯익은 세상’ 펴낸 소설가 황석영
입력 2011-06-03 17:28
소설가 황석영(68)의 신간 장편 ‘낯익은 세상’(문학동네)은 그가 고등학생이던 1962년 ‘입석 부근’으로 문단에 나온 지 햇수로 50년 만에 펴낸 작품이다. 반세기라는 시간동안 그는 한국 리얼리즘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 인파이터였지만 칠순을 앞둔 시점에서 이 작품은 노년기를 뜻하는 이른바 ‘만년문학’의 문턱을 넘는 첫 번째 작품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에게 붙들려 지난해 10월, 중국 위난성 리장(麗江)에 주저앉아 꼼짝 없이 소설을 쓰게 됐지요. 절반쯤 썼을 때 집사람이 날 잡으러(?) 왔더라고요. 그래서 중단하고 귀국했다가 올 3월, 제주도에 내려가 나머지를 마저 써서 탈고했지요. 원고지 700매 분량인데 전작 장편을 쓰기는 처음이에요.”
3일 리장 현지에서 만난 황석영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에게 길들여진 한 마리 호랑이처럼 보였다. “내년이면 등단 50년이고 내후년이면 칠순이잖아요. 내 아들이 마흔 살인데 어버이날 손주와 함께 집에 와서 한 마디 하더군요. 아버지, 이젠 ‘사나운 형님’이 아니라 할아버지가 되십시오.”
그 말을 들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이젠 햇살도 좀 쬐이며 즐길 줄도 알고, 후배들이 쓸 것도 남겨놓고, 상대방 의견도 들어주는 여유가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 느낌처럼 그가 지금까지의 정통 리얼리즘 문학에서 탈피해 다른 세계로의 변모를 보여주는 작품이 ‘낯익은 세상’이다. 한 편의 슬픈 동화 같은 이 작품은 한때 쓰레기 매립장이었던 꽃섬(난지도의 옛 이름)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1980년대가 시간적 배경이지만 딱히 연대를 고정시킬 이유가 없을 만큼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이는 자기의 이름 따위는 절대로 아무에게도 가르쳐주지 않았다. 더구나 성 따위는 더욱 그랬다. 학교에 다니는 것들이 성까지 붙인 이름을 서로 큰 소리로 부르곤 하는데, 그런 건 초등학교 꼬마들이나 하는 짓이다.”(9쪽)
소설은 엄마와 함께 꽃섬으로 흘러든 열네 살 소년 딱부리가 최하층 사회에서 겪는 성장기라는 점이 두드러진다. 그리고 그 두드러짐은 인간이 소비하고 버린 것들의 최종 종착지인 쓰레기장에 오히려 문명에 대한 저항의 오래된 원천이 있음을 그려 보인다는 데 있다. 이 작품을 밀고 나가는 황석영의 필법이 예전에 비해 한층 추상화되고 있음도 변화라면 변화다. “카프카가 난지도에 대해 쓴다면 어떻게 쓸까, 하고 생각해보았지요. 현실을 왜곡하거나 변형하지는 않지만 사건의 배치가 엉뚱해서 작품이 저절로 추상화된다는 의미에서 카프카를 떠올린 것이죠. 소설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열려있는 존재인데 아이들을 질료로 했기에 작품을 추상화하는 데도 매우 수월했지요.”
작가의 손길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가난한 사람들이 공동체의 축제처럼 행하는 식사, 어른 되기를 거부하는 아이들의 천진성, 자연의 질서에 대한 눈뜸에 정성을 쏟는다. 그렇게 그려진 풍광은 우리가 지나온 전사(前史)만이 아니라, 당면한 현재로서, 그리고 다가올 미래로서 존재한다.
“사실 이 소설을 마무리할 즈음, 일본 원전 사고를 접하면서 우리가 일궈낸 세계가 하루아침에 다 무너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요. 근대화 이후 생산과 소비를 극대화 시키며 살아온 우리가 소홀히 여겨왔던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버린 셈인데, 내가 쓰레기장에 주목한 것은 현재의 삶이란 결국 끊임없이 만들어서 쓰고 버리는 욕망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는 생각에서죠.”
리장에서 집필할 때 아내가 쓰던 노트북을 가져갔는데, 어느 날 우연히 작업하다 내버려둔 바탕화면의 캄캄한 어둠 속에서 처가의 가족사진이 떠오르는 것을 지켜보았다는 그는 “그건 시간과 공간의 덧없음을 말해주는 아주 쓸쓸한 장면이었다”며 그 쓸쓸함이 이번 작품 어딘가에도 묻어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한결같이 개별적 이름이 없다. 딱부리, 땜통, 방개, 송장메뚜기는 아이들의 이름이고 아수라, 두더쥐, 헬멧, 빼빼엄마, 버드나무 할미 등은 어른들의 이름이다. 이 역시 특정 개인을 드러내지 않고 작품 자체를 추상화하기 위한 작가의 전략인 것이다.
꽃섬은 인간과 정령, 문명과 자연 사이의 경계선을 이룬다. 그리고 빼빼엄마는 그 두 세계를 함께 살고 있는 꽃섬 주민들의 대표격이다. 샤먼의 풍모를 가지고 있는 빼빼엄마, 숲속에서 김서방네(정령들)와 함께 노는 아이들은 신과 정령이 추방된 인간 세계, 이른바 더 이상 신화를 찾을 수 없는 탈마법화된 세계에 대한 동화적 안티테제인 셈이다.
“자료를 찾다보니 어느 인류학자가 난지도에 대해 쓴 게 있더군요. 백년 뒤에 난지도를 파보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모든 것들, 모든 욕망들을 발굴할 수 있을 거라고 썼더군요. 흥미로운 지적이지요. 난지도 쓰레기장에 묻어버린 것은 지난 시대의 우리들의 욕망이었지만, 거대한 독극물의 무덤 위에 번성한 풀꽃과 나무들의 푸르름은 그것의 덧없음을 덮어주고 어루만져주고 있는 것 같아요. 도깨비가 사라진 것은 전기가 들어오고부터라는 시골 노인들의 말처럼, 지금의 세계는 우리와 더불어 살아온 도깨비를 끝없이 살해한 과정이었지요. 나는 우리 속에 그런 정령을 불러내어 질문을 해보고 싶었어요. 내 속에 그게 정말 아직도 살아 있는 거냐, 라고요.”
황석영은 “다음 작품으로 19세기 조선조 말에 온갖 풍랑을 겪는 이야기꾼을 주인공으로 한 소설을 쓸 계획”이라며 “‘이야기꾼’(가제)은 비로소 등단 50년을 맞는 나 자신의 아바타이자 내 자신에 대한 작가론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장(중국)=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