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惡人’… 살인자와의 사랑 용서받을 수 있을까
입력 2011-06-03 17:34
“단순한 살인 사건 하나만으로 어떻게 이렇게 압도적인 영화를 만들었는지 놀랍습니다.”
봉준호(42) 감독은 영화 ‘악인’을 찍은 재일동포 3세 이상일(37) 감독에게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일 저녁 서울 강남구 신사동 CGV압구정에서 열린 ‘시네마톡’ 행사에서 영화를 보고 난 직후였다. 이 감독은 “평소 존경하는 봉 감독께서 칭찬해주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다”며 얼굴을 붉혔다. 두 감독은 시사회 직후 1시간에 걸쳐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2004년 덴마크 코펜하겐의 한 영화제에서 만난 이후 7년 만에 이 감독을 다시 보게 됐다는 봉 감독은 “영화 ‘악인’은 등장인물들의 힘이 강력하고 모든 장면에서 정면 승부하는 듯한 용기를 보여준다”며 “이 감독과 밤 새워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 감독은 “봉 감독의 영화를 볼 때마다 ‘아∼ 나에게 없는 게 저기 있구나’하는 질투심을 느끼게 된다”며 “실제 지난해 9월 일본에서 ‘악인’을 개봉하기 전 배급사 직원들과 봉 감독의 영화 ‘마더’를 함께 보면서 서로에게 기합을 불어넣었을 정도다. 그런 봉 감독이 제 영화를 좋게 봐주시니 감사할 따름”이라고 화답했다.
악인은 살인자 유이치(츠마부키 사토시)와 그를 따라나선 여인 미츠요(후카츠 에리)의 사랑을 다루며 선과 악이 과연 무엇인지 되묻는다. 또 피해자와 가해자의 가족 등 주변 인물 이야기를 통해 일본 사회가 지닌 폭압적 히스테리와 세대 간, 계층 간 갈등을 표출하고 더 나아가 인간 본연의 복잡한 심리를 꿰뚫어본 작품이다. 소설 ‘퍼레이드’ ‘파크 라이프’로 유명한 인기작가 요시다 슈이치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고 ‘아시아의 엔니오 모리꼬네’로 불리는 히사이시 조가 음악을 맡았다.
남녀 주인공뿐만 아니라 피해자의 아버지(에모토 아키라)와 살인자의 할머니(기키 기린)의 열연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영화는 지난해 일본아카데미 사상 최다인 5개 부문(남·녀 주연상, 남·녀 조연상, 음악상)을 휩쓸었고 몬트리올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봉 감독은 영화 음악에도 관심을 보였다. 봉 감독은 “히사이시 조를 찾아가 영화 ‘살인의 추억’의 음악을 직접 의뢰한 적이 있는데, 살인의 추억과 그의 장렬한 스케일이 맞지 않을 것 같아 막판에 제가 제안을 틀었다”며 “이 감독은 히사이시 조와 함께 작업하기 어땠느냐”고 물었다. 이 감독은 “배우와 연기가 우선이고 그 뒤에 음악이 깔리기를 바랐지만 처음엔 (히사이시 조의) 음악이 몇 군에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일주일동안 매일 히사이시 조의 스튜디오에 찾아가 망령처럼 서서 감시했다”며 “선생님(히사이시 조)이 여기 안계시니 이런 말해도 되겠죠?”라고 대답해 폭소를 자아냈다.
봉 감독이 끝으로 “제 경우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새로운 스토리와 인물, 이미지, 장면, 색다른 갈등 등을 만들어내는 고통을 겪는다. 이 감독이 쉽지 않은 주제를 훌륭히 소화한 것 같아 부럽다”고 덕담을 건넸다.
이 감독은 “영화를 찍기 전에는 제 영화가 어떤 의미를 갖는지 잘 몰랐는데, 지금 돌이켜보니 사람의 마음을 조종해 각종 사건과 갈등을 일으키는 욕망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 같다. 슬슬 차기작을 고민하겠다”며 끝인사를 대신했다. 19세 이상 관람가로 9일 국내 개봉한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