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도경] 靑·통일부 ‘北 폭로’ 어설픈 대응
입력 2011-06-02 18:23
비밀접촉에 나선 남측 당국자들이 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돈 봉투를 건넸다는 북한의 1일 주장은 사실 여부를 떠나 언어폭력이자 도발에 가깝다. 외교사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상대방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않았다. 현 정권의 대북정책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조차 “북한이 너무했다”라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모멸에 가까운 ‘말 폭탄’ 공격을 당한 우리 정부의 대응은 기대 이하다.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측 보도가 나오자마자 외부와의 접촉을 끊어버렸다. 그리고 3시간이 지나서야 통일부 대변인 논평을 내놨다. “우리의 진의를 왜곡한 일방적 주장으로 일일이 대응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는 게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나 논평이나 이후 이어진 브리핑 어디에도 북한 주장의 어느 대목이 거짓이고 왜곡인지 등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은 뒤따르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폭로 배경으로 ‘북한 내부사정이 복잡하다’는 음모론에 가까운 추정을 했다. 우리 측이 3차례 정상회담을 하자고 제안했는지에 대해 정부는 “구체적인 내용을 정식으로 제안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비공식적으로는 했다는 말로까지 들렸다. 왜 정상회담 비밀접촉에 통일부 대변인 명의로 논평을 냈느냐고 묻자, 정부 당국자는 “저쪽도 (국방위) 대변인이 했으니까…”라고 얼버무리기도 했다.
대북정책을 주도해 온 청와대가 통일부 뒤로 숨어버린 셈이다. 청와대 외교·안보라인 당국자들은 자신들의 언급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가는 데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북한이 판을 뒤엎었다고 똑같이 대응해 남북 관계를 파탄나게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해명도 설득력은 있다.
하지만 청와대와 정부가 우물우물하는 사이에 북한 주장은 국민들에게 ‘사실’로 굳어지고 있다는 데 문제가 있다. 도발을 당했으면 적정한 대응이 필수다. 그러지 않으면 북한은 차치하고라도 ‘투명하고 원칙 있는 남북관계’를 주창해 온 현 정권 3년에 대한 우리 국민들의 불신이 커진다.
정치부 이도경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