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오만 군데’가 별것 아니라는 총리 답변
입력 2011-06-02 18:33
저축은행 사태와 관련된 국회 대정부 질문 첫날인 2일, 관심의 초점은 김황식 국무총리의 발언이었다. 김 총리는 지난해 감사원장 재직 시 저축은행 감사 과정에서 오만 군데서 압력을 받았다고 지난 2월 언급한 바 있다. ‘오만 군데’가 도대체 어디 누구인지 그 구체적 내용을 낱낱이 밝히라는 게 여론의 주문이었다. 여야 의원들의 질의도 여기에 집중됐다. 그런데 김 총리는 두루뭉술한 답변으로 넘어갔다. 파문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이라면 의혹만 쌓일 뿐이다.
김 총리는 “저축은행 감사에 저항하는 일정 그룹이나 세력이 행하는 일체의 어필 또는 청탁을 그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답했다. 권력기관이나 여야 의원의 압력은 아니라고 해명했다. ‘오만 군데’라는 말 때문에 여론이 들끓었는데도 뒤늦게 ‘표현상 문제’라고 한다. 이게 사실이라면 허탈하다. 국민이 쉽게 납득할 리 없다. 국민은 김 총리가 온갖 로비 실상과 악(惡)의 실체를 알고 있으리라고 본다. 그럼에도 구체적 인물은 거명되지 않았다. 물론 총리 입장에서 공개하지 못할 부분도 있을 게다. 그렇다면 관련 단서를 검찰에라도 넘겨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데 협조해야 한다.
총리가 어정쩡한 모습을 보이는 사이 여야 의원들이 폭로전을 벌이는 것도 무책임하다. 면책특권을 이용해 상대방 인사의 실명을 거론하며 비리 연루설을 퍼뜨리는 게 볼썽사나울 뿐이다. 저축은행의 광범위한 로비에 정치권도 자유롭지 않을 텐데 오히려 큰소리를 쳐대니 배짱 한번 두둑하다.
정치권은 검찰 수사를 지켜봐야 한다. 자고 나면 새 인물이 속속 등장하는 게 지금의 ‘검찰 수사극’이다. 은진수 전 감사원 감사위원에 이어 저축은행 구명 청탁 또는 금품수수 혐의로 김종창 전 금감원장, 김광수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장 등이 소환을 앞두고 있거나 조사를 받았다. 게다가 정선태 법제처장이 2007년 서울고검 재직 당시 저축은행 브로커로부터 1000만원을 받았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조만간 검찰의 칼날이 정계를 겨냥할 수 있다. 그때 가서 정치권은 뭐라고 변명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