땀을 흘린다 0.1% 관객을 위하여… 손인영 예술감독의 NOW무용단

입력 2011-06-02 18:14


이상하게도, 대화는 가수 임재범 얘기로 시작됐다.

“그분이 요즘 왜 인기가 있는지 아세요? 그분은 어떤 풍의 노래를 불러야, 어떤 몸짓을 해야 사람들이 좋아하는지 알아요. 그게 감이죠. 감은 아파 본 사람에게 생기는 내공 같은 거예요. 저와 나이도 비슷한데, 저도 많이 아팠어요. 30대 초반에는 언론에도 많이 나오다가 이후론 지하 생활의 연속이었죠. 그렇게 한 20년 하니까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좋아하는지 조금은 알겠어요. 너무 많은 걸 가지면, 사람들이 공감하지 않아요.”

손인영(49)씨는 의자에 앉아 이 얘기를 하면서도 춤을 췄다. 목소리를 반주 삼아 양손은 쉼 없이 허공을 오가고 어깻짓으로도 말을 하는 그는 무용수다. 20대 여성 단원 8명으로 구성된 나우(NOW)무용단의 단장이자 예술감독이고, 무용단을 운영하는 사단법인의 이사장이면서 그 법인이 사회적 기업으로 등록돼 CEO(최고경영자)이기도 하다. 전통무용과 현대무용을 아우르는 ‘순수예술’을 한다.

문화체육관광부 통계를 보면 한국인 중 1년에 한 번이라도 무용 공연을 보는 사람은 0.7%. 영화 59%, 연극 8.1%, 미술 6.8%에는 상대가 안 되고, 음악회 3.6%에 견줘도 5분의 1 수준이다. 문화예술 지출 항목 중 무용에 쓰는 돈이 가장 많다는 사람은 0.1%에 불과하다. 이 와중에 단원들에게 월급은 물론이고 ‘4대 보험’까지 들어주고 있는 무용단 나우. ‘한국에서 무용수로 사는 법’이 궁금해 찾아갔더니 대뜸 해주는 얘기가 임재범이었다.

지난달 31일 서울 상도동 숭실대 부근 먹자골목. 한 건물 지하 1층에 있는 나우무용단 스튜디오는 간판이 없어 찾는 데 애를 먹었다. 5년째 월세 94만원에 35평 공간을 빌려 쓰고 있다. 바로 위층은 대학생들에게 삼겹살 1인분을 4500원에 파는 식당이다.

이날은 D-10이었다. 오는 10∼11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에서 현대판 춤극 ‘흥부’를 무대에 올린다. 사람들에게 익숙한 이야기를 소재로 현대무용을 하는데 그 기본 동작은 전통춤에서 따온다고 한다. 연습이 한창이었다.

상처 입은 제비역의 김병화(28)씨가 몸을 굽히고 오른손을 뒤로 내뻗더니 손끝을 파닥거렸다. 한쪽 발에 체중을 싣고 절름절름, 겅중겅중 걷는데, 땀은 벌써 연회색 티셔츠를 진회색으로 바꿔버렸다. 박송이(26)씨는 공연의 클라이맥스에서 판소리에 맞춰 ‘인연’을 표현해야 한다. 왼쪽 가슴을 왼쪽 다리에 붙인 구부정한 자세로 시작해 느릿느릿 양손을 돌린다. 이 동작은 ‘물 흐르듯’ ‘붓 가는 듯’ 해야 한다고 손 감독이 말했다.

-저런 동작을 저렇게 반복하면 몸이 괜찮은가요?

“우리는 어릴 때부터 무용만 했어요. 척추측만증에 디스크도 있죠. 날씨가 꾸물꾸물해지면 관절이 먼저 알아요. 내일 비가 올지 말지.”

손 감독은 잠시도 가만있지 못했다. 그의 몸이 단원들에겐 교과서다. 직접 박씨 앞에서 ‘붓 가는 듯한’ 몸짓을 반복해 보여준다. 말이 필요 없는 연습에 스튜디오는 잠시 정적에 빠졌다. 먹자골목을 지나가는 트럭 행상의 녹음기 소리가 파고들어왔다. “배추 세 단에 만원이요. 만원.”

무용단의 점심시간은 오후 1시부터 2시까지. 무용수들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을 스튜디오 바닥에 풀어놓고 둘러앉았다. 반찬은 김치와 불고기, 햄과 버섯무침. 재빨리 식사를 끝내고 1층 건물 현관 앞으로 몰려가더니 땅바닥에 주저앉아 햇볕을 쬔다. 김병화씨는 “하루 종일 지하에 있다 보니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빛을 느낄 기회가 없다”고 말했다.

이날 휴식은 평소보다 짧았다. 공연이 다가올수록 더 짧아질 것이다. 흥부 역할의 남자 객원 무용수 손영민(33)씨가 합류해 군무(群舞)가 벌어졌다. 단원들의 훤히 드러난 쇄골은 땀으로 번들거렸고, 잠시라도 음악이 멈추면 공간은 무용수들의 ‘헉헉’ 숨소리로 채워졌다. 단원 중 가장 몸이 가녀린 조영란(27)씨 어깻죽지에는 오늘도 빨간 자국이 남았다.

“하루 두세 군데는 이런 상처가 남아요. 연습 중에 흥분하면 앞뒤 못보고 부딪치니까. 까지기만 하면 다행인데 멍이 들기도 하죠. 키와 몸무게요? 163㎝에 44㎏. 비단을 들고 추는 춤처럼 전통적인 선을 표현할 때 유리해요. 희망사항은…. 여기에 샤워실이 생기는 거.”

국공립 무용단을 제외하면 4대 보험 들어주는 무용단은 국내에 몇 개 안 된다. 무용계에선 나우를 ‘독립무용단’이라 부른다. 전통무용, 현대무용 같은 경계를 두지 않고 활동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콜롬비아 등 해외공연을 12차례나 했다. 국내 공연까지 합하면 총 39회다.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공연예술집중육성단체로 선정됐고, 2009년 사단법인으로 등록했다. 서울시는 지난해 2월 나우를 ‘예술하는’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했다.

수석 무용수 김병화씨는 ‘무용수로 사는 법’을 이렇게 설명했다.

“예전에는 프로젝트로 움직였어요. 다달이 돈 나오는 게 아니라, 6월에 공연이 있으면 3월부터 연습을 하는데 5월까지는 돈 없이 지내다가 6월에 공연료와 봉급을 합쳐 받는 거였죠. 대학 무용과 졸업생 중 절반은 무용을 그만뒀어요. 계속하더라도 학생들 레슨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거나 필라테스, 벨리댄스, 뮤지컬 쪽으로 가요. 우리는 그래도 월급이 나오니까 무용만 하면서 조금씩 저축도 할 수 있어요. 감사한 일이죠.”

이들이 하루 8시간 이상 스튜디오 바닥을 땀으로 덮고서 가져가는 고정급은 한 달에 90만2000원쯤 된다. 여기에 경력별 차등을 둔 공연수당이 더해진다. 단원들의 수입을 평균 내면 월 100만원이 조금 넘는 수준. 그들이 ‘감사하는’ 액수는 이렇다.

손 감독은 1985년 세종대 무용과를 졸업하자마자 국립무용단에 들어갔다. 거기서 20년만 전통무용수로 활동하면 평생 연금이 나오는 준공무원 자리였는데, 7년 만에 뛰쳐나와 미국 뉴욕 컬럼비아대로 유학을 떠났다.

“내 젊음이 곧 끝날 것만 같았어요. 틀을 벗고 싶었지요. 서울 면목동에서 17번 버스 타고 남산 국립극장까지 매일 오전 6시에 출근해 연습했어요. 라면도 140원짜리가 아닌 110원짜리만 먹었어요. 그렇게 모은 돈 3000만원을 다 털어서 최고 장비를 동원해 우리춤 공연을 하고 미국으로 갔지요. 전통무용에 현대무용을 덧붙여보려고, 창조와 재창조를 위해서.”

그는 국립무용단 시절 결혼을 했지만 임신 사실을 모른 채 연습하다 유산했다. 이후엔 춤만 그에게 남았다. 6년간의 유학생활도 혼자였다.

“저는 경계인이에요. 현대무용에선 저를 현대무용가로 보지 않고, 한국무용은 저를 전통무용가로 잘 보지 않았죠. 지금은 나아졌지만 단원 선발하려고 오디션을 하면 아무도 안 왔어요. 선생님들께 부탁해 제발 제자들 좀 보내달라고 해야 했어요.”

만약 예술이 사람들의 공감을 끌어내는 일이라면, 그걸 하기 위해선 관객들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손 감독은 국내로 복귀한 뒤 한동안 관객과 만나지 못했다. “석 달간 공연을 준비해서, 모든 걸 다 쏟아 부어서 무대에 올렸는데, 유료 관객이 딱 4명인 경우도 있었어요. 그냥 우리끼리 한 거죠. 하고 나면 쓸쓸했어요.”

그래서 관객을 찾아 나서기로 했다. 공연이 끝날 때마다 직접 무대에 올라 마이크를 잡았다. “조금 부족하고 말랑말랑한 사람에게 대중이 공감하는 거더라고요. 춤만 열심히 추고 기가 막힌 테크닉을 선보인다고 좋은 작품 되는 게 아니었던 거죠. 살짝 부족해 보이고, 어딘가 비어있는 듯한 거에 묘한 매력이 있어요. 임재범처럼. 관객들과 대화하면서 그런 솔직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어요.”

손 감독은 “어느 날 행운처럼 페이스북이 나에게 찾아왔다”고 말했다. 페이스북에 매일 글을 올리고 사람들과 춤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온라인에서 모인 관객들은 공연 때마다 오프라인 모임을 열더니 지난달 나우무용단을 후원하는 계좌까지 만들었다. 성형외과 의사, 와인업체 대표, 광고기획사 사장, 다큐멘터리 감독까지 120여명의 후원자가 생겼다.

-한국에서 무용하기, 어떤가?

“눈물나게 하는 질문인데… 대중의 수준이 높아졌다. 한국 사람들이 외국 거 좋아하던 시대는 갔다. 한국 사람이 좋아하는 게 따로 있는 것 같다. 예전엔 산 정상에 올라서 ‘야호’ 하는 걸 좋아했다면, 지금은 봉우리에서 살짝 내려와 골짜기 걷는 걸 즐길 수 있게 됐다. 곰곰이 생각해서 느껴지는 맛을 즐긴다. ‘나는 가수다’도 그런 흐름과 닿아 있다. 무용은 이런 감성에 잘 어울린다.”

-그래도 많이 힘들어 보이는데, 계속할 건가?

“춤은 내 인생의 전부니까. 평생 뭔가에 쫓겨 왔는데, 이젠 내가 가진 재능을 사회에 나누고 싶기도 하다.”

글=우성규 기자, 사진=서영희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