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자-비리 금융인, 부도난 이중 인생… 부산저축은행 김민영 대표의 두 얼굴
입력 2011-06-02 18:01
지난달 23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조사실에서 보물 18점과 고서(古書) 980여점이 공개됐다. 한글 창제 직후의 한글 모습을 보여주는 월인석보, 전남 강진에 유배된 다산 정약용이 아내 치마를 잘라 쓴 하피첩, 조선 세종 때 판각한 6개 불교 경전 묶음집 육경합부 등. 사과상자 42개에 담아 트럭 석 대로 운반해 왔다.
이것은 모두 한 사람이 소장한 문화재였다. 소유주는 금융 비리로 서민 예금자들에게 막대한 피해를 안긴 김민영(65) 부산저축은행 대표이사. 이 ‘비리 금융인’은 그동안 고미술계에서 전통문화를 알리기 위해 강연에 나서고, 주말이면 배낭 메고 유적 답사를 떠나며, 보물급 문화재라도 망설임 없이 기부하던 ‘헌신적 사학자’로 통했다.
문화계 인사들은 검찰에 구속된 그의 비행에 경악스러워 했다. 31세 아들에게 갤러리를 차려주고, 그림 구입비 84억원을 은행돈으로 지원하고, 다시 그림을 담보로 362억원을 불법 대출해 준 의혹의 비리 금융인과 헌신적 사학자 중 그의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사학도에서 비리 금융인으로
“계속 불교사를 공부하려던 그가 회사에 취직했다는 소식을 뒤늦게 듣고 깜짝 놀랐다. 내가 아는 그는 적어도 종교적 신념이 강한 인물이다. 몰랐던 사실이 보도되니까 요즘 감을 잡을 수 없다.”
서울대 사학과 선배인 최완수(68)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젊은 시절 서울 인사동 고서점을 헤매던 그가 금융인이 된 것부터 의아하다는 얘기다.
김 대표는 고교시절부터 고서에 매료됐다고 한다. 광주일고 2학년 때인 1962년 독일어 교사로부터 우리 문화를 제대로 알려면 불교 공부가 필요하다는 권유를 받고 그는 광주 동광사를 찾았다. 이후 불교경전 한글화 작업을 한 윤주일(1895∼1969)의 제자가 됐다.
서울대 재학시절 출가를 결심했지만 한국전쟁 때 아버지와 형제들을 잃고 홀로 아들을 키운 어머니를 외면할 수 없어 포기했다. 그래도 방학 때면 교재를 만들어 고향인 광주에 내려가서 고교 후배 등에게 경전을 가르쳤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서울대 농대를 졸업하고 다시 사학과에 학사 편입한 그는 고서점을 다니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버려져 있는 고서 단편(斷片)을 구입해 파손이 심한 것은 태우고 나머지는 배접(褙接)하며 한 점 두 점 모아갔다. 다들 사학자가 되겠거니 생각했던 그는 예상을 뒤엎고 타이어 제조 회사에 입사했고, 이후 부산저축은행으로 자리를 옮겼다.
취직 후에도 주말이면 사학자로 활동했다고 한다. 한 달에 두 번은 아내나 회사 직원들과 문화재 답사를 다녔고, 나머지 두 번은 역사 연구 모임에서 회원들에게 강연을 했다. 광주일고 친구들 사이에선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쓴 유홍준만큼 박식한 사람으로 통했다.
김씨가 소장한 고서들이 처음 세상에 공개된 건 2007년이다. 그해 10월 30일∼11월 10일 동국대 중앙도서관에서 고서 161점을 전시했다. 대학 측은 그가 소장한 문화재 내역을 정리해 도록으로 발간했다. 도록에 따르면 그는 당시 고서 2200여점을 갖고 있었다(현재 검찰이 확보한 고서는 약 1000점이다).
“지나가는 말로 (고서를) 공개하라 했는데 흔쾌히 좋다고 해서 놀랐다. 컬렉터들은 고서를 공개하면 희귀성이 떨어지고 가치가 낮아져 공개를 매우 꺼린다. 당시 그가 고서를 스캔해서 도록으로 발간토록 허락했는데 이쪽 계통에서 흔치 않은 일이다.”
당시 전시회를 주선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서지학자들과 도서 수집가들의 모임)’ 최철환 회장의 말이다. 이 전시회에서 김씨의 대표 소장품인 월인석보 9, 10권(보물 745-3)도 공개됐다. 고서점계의 거장이던 ‘통문관’의 고(故) 이겸노옹에게 구입한 보물이었다. 그는 도록집에 이렇게 기술했다.
“이겸노 어르신께서 물객유주(物客有主·모든 물건은 다 임자가 있다)라며 입수된 고서들을 가장 먼저 보고 구입할 기회를 주셨고, 특히 월인석보 9권과 10권을 꼭 수장하도록 권하셨습니다. 당시 처지로는 감당하기 힘들었으나 다행히도 안사람의 곗돈으로 수장의 기쁨을 간직할 수 있었습니다.”
김씨가 언제 월인석보를 구입했는지 알려진 건 없다. 다만 보물로 지정된 83년 5월 7일 이전에 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국가·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재는 구입할 때 문화재청에 신고해야 하는데 김 대표는 월인석보를 구입했다고 신고한 기록이 없다.
고서점 ‘통문관’을 거쳐 KBS ‘TV쇼 진품명품’ 감정위원으로 활동한 김영복(57)씨는 “이겸노옹께서 젊은 사람이 고서 찾아 헤매는 모습이 예뻤는지 김 대표를 아꼈다. 그의 고서 대부분은 통문관에서 산 것”이라고 했다.
이석희 전 국세청 차장과 같은 문화 모임
그가 몸담은 단체 중 유명 인사들이 가입된 곳은 문화유산 답사 모임인 ‘우리문화사랑’. 회장은 김영삼 정부 시절 문화부 장관을 지낸 송태호씨다. 1997년 대기업에서 한나라당 대선자금을 불법 모금한 ‘세풍(稅風)’ 사건으로 복역했던 이석희(65) 전 국세청 차장과 소설가 김훈 등 문화계 인사들이 운영위원을 맡고 있다. 김 대표는 ‘조선중기 유학과 양반문화’ ‘지리산 기행’ ‘오대산 자락의 산사와 동해 바다를 찾아서’ 등의 문화답사에서 강의를 진행했다.
이석희 전 차장에 이어 김 대표도 비리에 연루되자 이 단체 회원들은 문화 활동이 정치적 색깔로 오해 받을까 몸을 사리는 눈치였다. 한때 회장을 맡았던 한 교수는 “문화재 공부하며 여행 가는 모임 하자고 해서 조직됐고, 누가 먼저 모임을 주도했는지, 내가 언제 회장을 맡았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송태호 전 장관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나는 정말 강연만 했다”고 손사래를 쳤다.
김 대표는 광주에 기반을 둔 누리문화재단과 불교학연구회 회원으로도 활동했다. 이 학회에 소속된 한 교수는 “(김 대표가) 학회지 발간할 때마다 조금씩 후원했고, 세미나에도 참석하곤 했다. 은행 청소부, 결혼 앞둔 여직원들을 잘 챙기고 불우이웃돕기도 했다고 들었다. 다른 건 몰라도 고서는 60년대부터 푼돈 모아 산 것이라는 걸 증언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가 고서로 투기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김씨가 국가·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재를 처음 거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시점은 구속을 앞둔 지난 3월. 문화재청 관계자는 “기록상 이제껏 고서를 매매한 흔적은 없다. 지난 3월이 처음이다. 보물 18점은 오래전부터 소장하다 뒤늦게 보물로 지정된 것”이라고 했다. 월인석보, 몽산화상법어략록(보물 1012호), 선종영가집(보물 1163호)은 80∼90년대, 나머지 15점은 2006년 이후 보물로 지정됐다.
지인들은 그가 보물급 고서도 기증했다고 전한다. 2002년 6월 예념미타도량참법 3-4, 7-8권(보물 1165호)를 대전 한 사찰에 있는 김모씨에게, 2009년 4월에는 한암 육필본 경허집을 오대산 월정사에 기증했다. 경허집은 30여년 전 그가 외국인 바이어와의 약속을 앞두고 우연히 방문한 인사동 고서점에서 발견한 것이다.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육필본 경허집을 읽으며 위로를 얻었다고 지인들은 전했다.
조현종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은 “사찰에 필요하다 싶은 고서는 다음날 직접 차를 몰고 가서 전해줬다. 국립중앙박물관도 사찰에서 고서를 빌릴 일이 생기면 김 대표에게 부탁하곤 했다. 사찰이 대여를 꺼리던 귀한 고서도 그가 나서면 해결됐다”고 말했다.
압수 당한 보물
그는 구속되기 직전인 지난 3월 보물 18건을 10억원에 팔았다. 이 정도 거래면 컬렉터끼리 사고팔기 마련인데 보물을 구입한 심모씨는 이제껏 국가·지방자치단체 지정 문화재를 한 점도 소유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관련 사실이 보도되자 심씨는 지난달 23일 돌연 계약을 취소했다. 보물 18점은 다시 김 대표 소유가 됐고, 검찰이 압수했다. 계약 취소 사유에 대해 심씨는 “말할 순 없지만 법에 저촉되는 사항은 없다고 자신한다. (이 일로) 워낙 전화를 많이 받아서 스트레스가 심해 지방에 있다”며 말을 아꼈다.
김 대표와 심씨의 보물 거래 계약에 대해 고서전문가 김영복씨는 “그 양반은 물건을 팔지 않는다. 열심히 연구하는 사람 만나면 이것저것 그냥 줬다. (심씨에게도) 잘 보관해 달라고 부탁한 게 아닐까 싶다”고 했다. 고미술품 거래사 ‘옥션 단’을 운영하는 그는 김 대표의 오랜 지인이다. 김 대표와의 거래 내역을 묻는 질문에는 “말할 수 없다. 어쩜 문제 생기면 내가 법정에 설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1년 전 차린) 옥션 단에서 거래한 물품은 없다”고 했다.
김 대표가 구속되자 그가 소장했던 고서의 가치를 놓고 설왕설래했다. ‘보물 월인석보의 가치는 1000억원 상당’이라고 보도한 매체도 있다. 그러나 김종춘 한국고미술협회장은 월인석보 가격을 5000만∼6000만원으로 추정했다. 김영복씨는 그의 보물급 고서를 점당 1억∼2억원대로 평가했다.
고미술계에서 고서, 특히 그가 소장한 불교 관련 고서는 수요가 많지 않아 문화재적 가치에 비해 가격이 높게 형성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고서가 상당한 액수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향후 보물로 지정될 가치를 지닌 고서가 그의 소장품에 다수 들어 있기 때문이다. 보물 18점 외에도 김씨는 고서 2점에 대한 지정 문화재 신청을 해 둔 상태다.
“옛 것에서 지혜를 찾고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정신이 우리 문화의 생명력이다.” 그는 평소 이런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고매한 인품의 사학자와 비리 금융업자, 지인들은 두 얼굴 사이에서 헷갈려 했다. 두 얼굴 다 김민영 부산저축은행 대표의 것일지도 모른다.
박유리 기자 nopim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