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의 역사
입력 2011-06-02 17:54
중세 스콜라주의
동방에서 발전된 아리스토텔레스철학이 십자가원정 이후 서방으로 소개되면서 서방세계에 지성적 각성운동이 일어나게 됐다. 그 두드러진 운동이 스콜라주의다.
첫 번째 인물은 성 안셀름(1093∼1109)이다. 그는 롬바르도 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프랑스 베크의 수도사가 됐다. 훌륭한 인격과 뛰어난 지성적 능력으로 선생으로서, 영적 지도자로서 명성을 얻어 영국 켄터베리의 대주교가 됐다. ‘객관적 속죄론(만족설)’으로 안셀름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나?”에서 만족설을 전개한다. 인간은 죄악으로 모두 무능해졌기에 할 수 없이 죄 없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가 인간이 되셔야만 하였다. 죄가 없으시며 인간의 모든 죄를 대신 짊어지신 참 하나님이며 참 인간이신 그리스도만이 하나님을 만족시킬 수 있다는 만족설을 주장했다.
피터 아벨라르(097∼1142)는 프랑스 팰릿에서 출생한 뒤 로스켈리누스의 제자가 됐다. 선생들과의 많은 갈등으로 명성을 얻게 되었고, 파리대에서 강의할 때 많은 학생이 몰려왔다. 변증법과 신학을 강의하였고, 수녀 엘로이즈와 사랑에 빠졌다. 믿음과 이성의 관계는 “믿기 위해 나는 이해한다”라는 신학적 회의와 사변의 기초가 되었다.
이성과 신앙의 이층구조를 강조했다. 자연신학 형성의 기초가 됐다. 이상 세계는 물질세계에서 추구해 가야 함을 주장했다. 인간이 신을 찾아가는 것이다. 단일신론은 성부만이 인격임을 주장하고, 성자와 성령의 인격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다만 존재의 현현일 뿐이다. 이 때문에 그는 1121년 수아송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됐다. 그의 구원론은 선과 악의 구별이 모호하다. 로마군병은 모르고 죄를 저질렀기에 그들도 구원에 이를 수 있음을 주장했다. 지성적 독창성과 변증법이 버나드 등 보수주의자들을 흥분시켰다.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천사박사란 별명을 얻었다. 도미니칸 수도사요 학자였다. 베네딕트파 수도사가 되기를 원한 부모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그는 부모에 의해 15개월이나 감금당하기도 하였다. 선생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를 만나 아리스토틀 철학을 소개받았다. 1252년 파리에서 도미니칸 수도원 선생이 되었고, 1272년 나폴리에서 신학대전을 저술하고 도미니칸 학파를 형성했다.
첫째, 자연신학은 자연적 감각을 떠나서는 신의 존재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물질에서 이상의 세계를 추구해 가는 아리스토텔레스적 구조를 강조한다. 플라톤적 철학구조를 기독교화한 계시신학의 구조와 다르다. 둘째, 신의 존재 증명 5가지로 제일 운동자, 최고의 선, 최초의 원인, 최고의 등급 마지막으로 우주 질서의 근원으로써 하나님을 이해한다. 자연 속에 나타난 현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중세스콜라주의의 특징은 첫째, 생태학적 자연신학으로 오늘의 환경과 자연을 살리는 생태학적 신학에 기여할 수 있다. 둘째, 종교신학적 가능성으로 자연계시를 강조해 타종교와 대화의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셋째, 행동주의 도덕신학은 사회윤리의 중요성을 강조하게 되었고 현대의 남미해방신학, 흑인신학, 여성신학과 민중신학의 행동주의적 영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문제점도 적잖다. 첫째, 십자가신학의 약화다. 십자가의 복음을 강조하지 못하게 해 상대적으로 복음을 약화시켰다. 둘째, 신앙의인화보다 선행의인화를 강조한다. 셋째, 사변적 신학화는 신앙적 체험이 신학의 출발점이 되지 못하게 한다. 즉, 이성적 사변이 신학의 출발이 되는 한계가 있다.
김홍기 감리교신학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