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주께 하듯 정성으로 남 대하면 그게 바로 거룩한 예배요 기도
입력 2011-06-02 17:58
성경 말씀 중에서 한두 번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 있습니다. 그런 말씀은 묵상의 제목이 됩니다. 그 말씀을 붙들고 계속 묵상하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경우가 있습니다.
에베소서 5장 19절의 말씀을 같이 묵상해 봅시다.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여기에서 ‘화답하라’는 말이 나오는데 누구와 화답하라는 것일까요? 하나님과 화답하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성도들과 화답하라는 것일까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이라는 말로 미루어 보면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라는 뜻 같기도 한데 또 한편 ‘서로’라는 말이 들어 있는 것을 생각하면 성도들과 대화하라는 뜻 같기도 합니다.
어느 한 가지 해석만을 고집할 수 없지만 만약 이 말씀을 성도들 간의 대화로 해석한다면 이는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는 말이 마치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처럼 신령한 언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이렇게 해석하면 이 말씀이 우리들에게 주는 교훈은 참으로 심오합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 까닭에 스스로 고민할 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의 따가운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어떤 분의 말씀대로 주일 날 교회에서 설교 말씀을 듣고 집에 돌아와서 옷을 벗으면서 설교 말씀도 함께 벗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진실한 신앙생활을 하고 싶어 하는 성도들은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기도와 찬양이 일상생활 속에서 그대로 이어지게 할 수 없을까 늘 고심합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은 이런 고민에 대한 해결책을 암시해 줍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최고의 것을 온 정성을 담아서 바쳤습니다. 눈 먼 것이나 다리 저는 것이나 병든 것을 제물로 바치면 안 된다고 율법에서 규정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가인의 제사를 물리치신 까닭이 무엇입니까? 제물 자체보다 바치는 이의 정성이 담겨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말을 하되 ‘정성을 담아’ 가장 아름다운 말을 골라서 하면 그 말은 비록 사람에게 하는 말이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찬송과 기도가 됩니다. 남을 섬기는 일에 ‘정성을 다하면’ 그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됩니다. 사도 바울은 종들에게 권고할 때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에게 하듯’(엡 6:5) 하고, ‘주께 하듯’(엡 6:7) 하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에게 주는 선물에 ‘정성이 담기면’ 그것은 하나님께 바치는 제물이 됩니다. 감옥에 갇혀 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선물을 받고 감격한 나머지 ‘이는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빌 4:18)이라고 말했습니다.
예배와 기도와 찬양이 주일 날, 교회 안에서만 드려지는 게 아닙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서로 엉켜 사는 일상생활 속에서 ‘정성을 담아’ 사람들을 대하면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요 신령한 찬송이요 간절한 기도가 됩니다.
‘주일 신앙’에서 ‘평일 신앙’으로 나아가는 것, 신앙생활에서 생활 신앙으로 변화하는 것,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이고 ‘우리가 드릴 영적 예배’(롬 12:1)입니다.
오종윤 군산 대은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