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에 힘 준 나가수 - 비주얼 범벅 아이돌은 ‘과잉’ 쌍둥이’”

입력 2011-06-02 18:06


세시봉·아이돌로 책 낸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차우진 나가수·아이돌을 말하다

‘나는 가수다(나가수)’ ‘슈퍼스타 K(슈스케)’ ‘위대한 탄생(위탄)’ ‘세시봉 콘서트’. 공통의 적은 아이돌이다. 나가수와 세시봉이 ‘노래 잘하는’ 가수들을 앞세워 하고 싶은 말은 이런 것이 아닐까. ‘예쁘고 춤 잘 춘다고 가수는 아니야. 들어봐, 이게 진짜 가수야.’ 위탄과 슈스케의 공격 지점은 대형 기획사의 아이돌 생산 시스템이다. 나가수가 진짜 가수를 발굴하고 슈스케가 슈퍼스타를 낳으면 가요계는 정말 달라질 거라고, 사람들은 굳게 믿는다.

최근 1930년대 트로트부터 90년대 신세대 음악까지 대중음악사를 세대론으로 훑어본 ‘세시봉, 서태지와 트로트를 부르다’를 쓴 대중문화평론가 이영미(50)씨와 아이돌 문화보고서 ‘아이돌’을 공저한 후배 평론가 차우진(36)씨. 지난 28일 만난 두 사람은 ‘나가수’와 ‘세시봉’에 대한 대중의 열광을 불편해했다.

‘나가수’라는 음악적 퇴행

이영미(이)=아이돌이 궁금했어요. 2000년 이후 (가요) 신곡을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에 도대체 (아이돌 문화가) 어떻게 가고 있는지 누가 설명 좀 해줬으면, 그랬거든요. 글마다 편차는 있지만(‘아이돌’은 13명의 필자가 15꼭지의 글을 나눠썼다) 아이돌 문화현상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종합 보고서예요. 학술적 깊이와 미시적 섬세함을 동시에 갖췄고. 큰 흐름을 읽어보려는 제게는 도움이 많이 되는 책이에요. 고맙죠.

차우진(차)=대중음악 관련 책은 포스트잇 붙여가며 공부하는 자세로 읽는데, ‘세시봉…’은 음반 꺼내 들으면서 술술 읽었어요. 굉장히 친절하고 대중적으로 쓰셨어요. 개념어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 거나 개인적 경험을 끌어들여 큰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인상적이었고. ‘세시봉…’의 구어체는 대중음악 비평의 한 모델이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1세대 HOT부터 동방신기 빅뱅까지 계보도를 정리한 글을 썼잖아요. 이 음반들을 일일이 다 뒤졌겠구나, 품이 많이 들었겠다, 읽으면서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서는 음원 제공할 때 프로듀서 연주자 편곡자는 물론이고 작사 작곡자 정보도 안 주잖아요. 그냥 가수만 있는 거예요. 이거 문제죠.

차=인디신에서는 프로듀서 녹음스튜디오 같은 게 중요한데 주류에서는 아직도 가수만 봐요. 그래서 말인데, 나가수는 음악적 퇴행이에요. 음악을 가창으로 환원시키거든요. 가창이 전부인 양. 그동안 가요가 얼마나 발전했게요. 가수 중심에서 연주자 편곡자 엔지니어 같은 ‘만드는’ 사람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고 그들의 질적 변화가 가요 발전을 이끌었어요. 나가수 방식은 대중음악의 이런 질적 도약을 인정하지 않는 거예요.

이=음악에는 창작 재현 감상비평의 세 영역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음악을 재현(가창)으로만 봐요. 창작이 아니라 재현 기술로만 바라보는 한계. 물론 나가수 인기가 기성 가요계에 대한 불만인 건 맞다고 봐요. 화려하고 꽉 찼으나 인간적 감동은 없는, 비주얼 중심의 기계음에 대한 반작용인 거죠. 하지만 순수하게 음악만 놓고 봐도 나가수는 불편해요. 진짜 너무 힘을 줘요. 보통 공연할 때 85정도가 좋다 그래요. 나가수는 120, 140을 하는 거라. 그것도 매번. 과잉의 퍼포먼스에 감정 편곡 샤우팅 다 과잉이에요. 그 순간을 휘어잡아야 하니까. 그래야 죽지 않으니까. 가수들 저러다 오래 못 가지, 그 말이 절로 나와요. 왜 박노해 시 ‘노동의 새벽’에 ‘아 이러다가 오래 못 가지’란 대목 있잖아요.

차=실제 오래 못 가잖아요. 드러눕고 병원 실려 가고(웃음).

이=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애!(웃음) 나가수 음원만 모아놓고 하루 종일 들으면 미쳐버릴 걸요. 피곤해서. 굉장히 자극 강도가 높아요. 아이돌 음악은 기계음으로 자극해요. 건조하고 일상적인 음이긴 하지만. 나가수는 목소리와 감정으로 자극하죠. 무지하게 자극강도를 높였다는 점에서, (아이돌 음악과 나가수는) 동일한 거예요.

임재범과 소녀시대의 공통점

이=흥미롭게도 아이돌과 나가수 모두 세대통합적인 음악이에요. 대중음악사에는 세대갈등기와 통합기가 있어요. 70년대 세시봉, 90년대 서태지는 아래에서 ‘훅’ 치고 올라오는 세대갈등기 음악이에요. 반면 80년대는 세대통합 시대죠. 조용필 같은 슈퍼스타는 이런 때 나와요. 10대부터 60대까지 좋아하는. ‘단발머리’ 좋아하는 사람과 ‘한오백년’ 듣는 사람은 다르죠. 하지만 그게 조용필이라는 하나의 몸에 통합돼 있어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보수적인 시기이기도 하고.

내가 보기에는 지금이 80년대 같은 세대통합기예요. 보수적 시대. 남진의 ‘빈잔’이 어렵겠어요? ‘립스틱 짙게 바르고’ ‘짝사랑’이 어렵겠어요?(나가수의 도전곡들이다) 이건 10대도 좋아하고 50대도 좋아할 노래들이에요. 아이돌 음악도 되게 쉬운 선율이에요. 이건 어려워서 빼고 저건 튀어서 잘라내고. 기술적으로는 매끈하고 세련됐지만 결코 실험적이지는 않아요. 그래서 수용층도 넓죠. 10대부터 삼촌 이모팬까지 빵빵해요. 살기 바쁜 30대 후반 아저씨가 파격적이고 힘든 음악 듣겠어요?

차=아이돌 음악이 세대통합적이라는 건, 저는 잘 모르겠어요. 오히려 가장 혁신적인 음악은 아이돌판에서, 기획사에서 나오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걸그룹 f(x) 노래는 30대인 제가 못 들어요. 납득을 못해요. 사운드나 그런 게 어마어마한 게 있거든요. 내가 얘네 음악을 이해 못하는 건 내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음악이 아니어서구나. 그렇다면 오케이, 그래요.

나가수를 통해서 드러나는 아이돌에 대한 대중의 태도, 그걸 보고도 저는 절망했어요. 나가수에 핑클 출신 옥주현이 섭외된 뒤에 왜 욕을 먹겠어요? 단순하거든요. 아이돌 출신이라는 거죠. 40∼50대가 아니라 10∼20대가 그런다는 게 더 실망스러워요. 기계음, 오토튠 이런 것도 음악적 요소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냥 편법이나 가짜라고 치부하잖아요.

또 다른 ‘세시봉 세대’를 기다리며

차=책에도 많이 언급하셨는데 세시봉 열풍은 어떻게 보세요? 빅3(송창식 윤형주 김세환)가 포크의 주류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은 것 같아요.

이=일단 타이밍이 기가 막혀요. 99년 포크 30주년 행사 이후 ‘콘서트7080’이 생겼는데 등장한 건 70년대 후반 상업화된 포크가수들뿐이었어요. 그건 마치 서태지 듀스 빼고 클론이나 노이즈만으로 90년대를 말하는 거랑 같죠. 불만들이 쌓였겠죠. 이번에 초기 포크의 강력한 흐름 하나를 보여준 건 맞다고 봐요. 가장 유명하고 가장 실력 있는. 하지만 세시봉 모르면 간첩이란 얘기는 말도 안돼요. 양적 주류를 보자면, 그때는 남진 나훈아였죠.

차=90년대 역시 모든 걸 서태지로 환원하는 건 위험하다고 봐요. 당시 20대에게 영향을 미친 건 80년대 후반 해외여행 자율화 조치일 거예요. 2000년 이후 홍대 문화를 만든 것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전에 대대적으로 이뤄진 이태원 단속일 거예요. 갈 데 없어진 외국인들이 홍대로 몰려왔거든요.

이=상징이었겠죠. 시대를 대표하고 변화를 이끄는. 세시봉 세대가 나타나서 대중음악 판을 엎은 건 포크가 텔레비전으로 올라온 71, 72년 무렵이에요. 72년 유신헌법 통과 직전. 위에서는 막 찍어 누르고 보수는 절정으로 치닫고 그 아래에서는 저항이 부글부글 끓고. 지금도 달짝지근한 아이돌과 나가수 시대의 한구석에서 전혀 다른 것이 끓고 있을지 몰라요. 그게 치고 올라오면 새 시대가 시작되겠지요. 세시봉이나 서태지 같은.

차=보수가 극으로 치달을 때는 새벽이 멀지 않은 거죠(웃음).

이=나가수는 한 시대의 끝일 수 있어요. 기술 집착적인 시대의 끝. 그게 댄싱 기술이든 편곡 기술이든 가창 기술이든.

이영미 기자 ymlee@kmib.co.kr